"잘 지내."
"너도 잘 지내. 영진이 사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주고. 간다."
3년 동안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인사였다.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말은 노래 가사인 줄만 알았지, 현실에서 정말로 우리는 점 하나 찍을 찰나의 순간에 완전하게 남이 되었다.
내 주변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떠나가는 남편, 아니 방금 '전'남편이 된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고독감에 극도로 긴장이 되어 숨이 가빠졌다. 우주에 나 홀로 남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게 나는 미국 LA라는 낯선 땅에 두 돌이 막 지난 아들과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니 내가 왜 이 낯선 미국 땅까지 와서 싱글맘이 돼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냥 남들만큼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저 자식 때문에 내가 왜 이런 꼴이 됐지? 오랜 기간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순간이 되어 떠나가는 저 놈만 탓하는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하니 그게 더 비참해졌다. 고독감이 화가 되어 치밀어 올랐다. 너무 무서웠으니까.
오늘부터는 2인분 밥을 해서 둘이서만 밥을 먹고, 아들과 둘이서만 자고, 엄마랑만 책 읽고, 아들, 너랑 나랑 둘이서 모든 걸 다 해내야 해. 엄마 잘 도와줄 수 있지? 헤어지기 전에도 육아는 거의 다 내 몫이라 아이랑 단 둘이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 - 이러려고 하나님이 그전부터 나를 독박 육아로 훈련시키셨나 보네.' 하고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자동차는 아이 아빠가 가지고 가기로 해서, 나는 택시를 타고 데이케어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데이케어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하면서 혹시라도 아이가 데이케어에서 행동이나 정서 변화가 있다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부터, 육아 채널을 보며 부모가 헤어질 때 아이한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지 수백 번 찾아보고 스마트폰에 적어놓고 몇 번 말해주긴 했는데... 막상 집에 와서 웃으며 아빠를 찾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오늘부터 아빠가 없다는 얘기를 하려니 눈물부터 나왔다.
"영진아. 오늘부터는 집에 아빠가 없을 거야. 아빠는 우리랑 따로 살기로 했어. 아빠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아빠가 보고 싶을 땐 엄마한테 꼭 아빠 보고 싶다고 말해줘. 알겠지? 아빠 보고 싶어~ 해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신히 쥐어짜듯 얘기를 하니, 멀뚱멀뚱 나를 보던 아들이 내 표정을 따라 하며 "마미. 새드"라고 말한다. 아빠가 보고 싶을 텐데 아빠 보고 싶다고 안 하고 내가 우는 모습을 보니 아이가 더 놀란 것 같았다. 내 결정으로 혹시 아이에게 상처를 준건 아닐까? 이 생각에 한숨도 못 자고 아이 아빠가 없는 첫 아침을 맞이했다.
뜬 눈으로 걱정했던 밤과는 다르게,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분주하기 짝이 없어 등원 준비에만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도 등원 준비는 나 혼자 시켰던 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웬걸? 아빠가 없으니 내가 씻을 동안 아들은 내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씻을 수도 없게 방해한다. 그래도 아이 아빠가 양말이나 신발은 신겨주었는데 그 단 몇 분간의 도움조차도 없이 온전히 다하려니 등원 전에 진이 다 빠졌다. 미리 예약해둔 택시에 카시트를 싣고 데이케어에 아들을 데려다주는데 아들이 안 떨어지려고 구슬프게 운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택시를 타고 직장으로 향하는데 선생님이 했던 얘기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영진이가 데이케어 올 때 이렇게 운 게 처음이에요.'
아빠가 없어서 그런 건가, 아이가 불안해서 그런 건가, 왜 울었을까,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럴까, 나까지 떠날까 봐 그러나, 난 또 별 생각이 다 들며 헤어졌으면 안 됐나. 아이를 더 생각했다면 더 참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종종 잘못된 선택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 헨리 포드
나는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헤어짐을 결심했고, 그 순간에는 내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헤어짐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불행하리라.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하지 말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죄책감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아이랑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더 부정적인 사람이었고, 자기 연민과 피해 의식으로 가득 찬 부정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내 생각보다 더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