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 나는, 감정에 몰두하여 드라마틱하게 솔직하게 표현하고 쏟아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슬플 땐 슬프다고 하고, 그러다 격해지면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한국에 있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하면서 차라리 한국 갈까 하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신을 차리고 아이와 깔깔 거리며 웃다가, 아이를 재우고 나면 엄습하는 돈 걱정, 또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 전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인한 우울감이 무한반복됐다.
특히 아이가 아플 때는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출근을 못했고, 출근을 한 번 못하면 5일 결근, 5일 일을 못하니 월급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고,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가 감기에 걸려 학교를 못 가서 출근을 못할 것 같아요'라는 비굴한 메시지를 보내며 이러다가 직장에서 잘리는 건 아닐지, 마치 작은 불똥으로 시작한 불이 대형 산불로 번지듯 나의 걱정에 스스로 점점 압도당해갔다. 게다가 한 번 아프고 나면 지하 6층까지 처박혔던 우울했던 감정을 탈탈 털어내고, 겨우 실낱같은 햇볕이라도 드는 반지하까지 끌어올리는데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만 했다.
미국 친구들이 해주었던 위로 중 "One door closes another door opens" 이란 말이 있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즉, 한 가지 일에 실패하더라도 성공을 위한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는 뜻인데, 이런 말조차도 힘이 나는 게 아니라, 그냥 짜증이 나서 친구와 말하기가 싫을 정도로 그때의 내 마음 상태는 물이 샌 벽지에 낀 시꺼먼 곰팡이 같은 상태였다. 그딴 걸 어느 누구도 만지고 싶지 않겠지만, 나 또한 건드리지 마.라는 심술 가득한 독기를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미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꽁꽁 닫힌 열쇠도 없는 철문에 약해빠진 주먹으로 노크를 하며 욕을 하며 나 왜 이렇게 힘드냐고, 나한테 그리고 예쁜 아이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냐고 문에다 대고 욕을 해댔다. 당연히 노답인 내 상태에, 닫힌 문 뒤에서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아이가 회복하고 두려움에서 좀 해방되고 나면 '정신 차리고 애랑 행복하게 지내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하며 집 밖으로 나와 사교 활동을 좀 하면서 나의 슬픔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아주 조금은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래! 난 뭐든지 잘할 수 있어. 하는 넘치는 자신감이 드는 날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나 미친 거 아닌가? 할 정도로 감정과 생각이 긍정과 부정 사이를 줄다리기하듯 오갔다. 그 당시 나는 헤어지기 전부터 하고 있었던 심리 상담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뭐 하나 나아지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얘기하면 공감받고, 실컷 울고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우울해지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여전히 문 앞에서 문고리만 붙잡고 애꿎은 문만 발로 차고 문을 차느라 아픈 엄지발가락을 움켜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흐르고, 두 돌이었던 아이가 어느덧 세 돌이 되기 불과 두어 달 전이었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 그런지 가끔 내가 감당하기 힘든 떼 부림을 부리곤 했는데. 그날은 유독 고집부리는 게 심하게 느껴졌고, 나 또한 유독 예민했고, 모든 상황이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30분 넘게 바닥에 누워 떼를 쓰는 아이에게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는데 아이가 놀라서 더 큰 소리로 울었다. 그 순간 최악은 떼 부리는 아이도 아닌, 모든 상황도 아닌, 그 상황에 잔뜩 화가 나있는 나 자신이 최악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응급상황 발생 시 요령에 대한 안내를 해준다. 그 내용 중, 미성년자 동반 성인이라면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고, 그다음 아이의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라고 한다. 아이의 산소마스크만 신경 쓰다가 정작 내 걸 못 챙겨 내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죽으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없다. 산소마스크를 써야 할 상황이 이미 발생했다면 안내 방송에서 하라는대로 해야지만 둘 다 살 수 있다. 나는 아이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만 산소마스크를 씌워놓고 (그것도 제대로 작동이나 했을지 의문이다) 내 산소마스크를 쓰는 건 깜빡했다. 그러면서 숨이 막히다고 아이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멍청이었다.
이럴 거면 헤어짐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를 놀라게 하려고 더 슬프게 하려고, 내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지경이 되려고 헤어짐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둘이서 더 행복해지려고, 그럴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당당하게 내 손으로 문을 닫고 나왔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바로 사과를 했다. 사과를 하면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아이에게 그저 너무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내가 내 손으로 문을 닫고 나왔던 그 날, 스스로에게 했던 행복하게 살자는 결심을 메모장에 써내려간 다음, 내 정신건강을 먼저 챙기기 위한 정보들을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닫힌 문에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문과 똑바로 마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