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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le Mar 06. 2020

선과 악의 세계

「데미안」, 헤르만 헤세


어린 시절 기억 속 나의 데미안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속에서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락을 꾸준히 했으나 멀리 떨어져 사는 등 상황이 변하고 서로 성격이 변한 탓에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와의 초등학교 시절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공부와 세상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어진 대로 살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합한 말일 것 같습니다. 그저 학교는 다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녔고 방과 후에 다녔던 합기도 또한 목적의식 없이 다닐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고분고분한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학을 왔습니다. 제 바로 뒷자리에 앉았을 때 제가 먼저 말을 걸면서 친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항상 붙어 다녔는데, 그 이후로 제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그 친구를 통해서 했습니다. 부모님 동행이 아닌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가장 장거리인 일산 호수 공원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혼자 시켜먹어 본 적 없는 치킨을 공원에서 같이 먹어보기도 하고, 처음으로 친구의 집, 그리고 제 집에서 밤을 새우며 해본 적 없는 게임에 몰두하고 만화를 정주행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장 결정적으로 그 친구가 학원을 같이 다니자고 한 이후로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중학교 때는 서로 전교 1등과 2등을 다퉜습니다. 그 친구는 도전을 서슴지 않았고 어떤 것에 빠지면 무섭도록 집중하고 몰두하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멋있어 보였고 닮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저의 데미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변 사람, 특히 유년 시절의 주변 사람들은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황의 시기와 발전의 시기 - 선과 악의 세계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은 각자의 선과 악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싱클레어는 유년 시절 선의 세계에서 악의 세계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고, 크라머와 데미안을 통해서 구체화시키게 되며, 술과 유흥에 빠진 시절과 베아트리체와 피스토리우스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통해 성장하고 에바 부인과 전쟁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선의 세계만 있을 수 없으며 악의 세계만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차이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저 역시도 소소한 일탈(?) 속에서도 선의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왔는데요. 분명히 앞으로도 여러 상황 속에서 수많은 방황을 겪고 악의 세계를 마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결국 제가 추구하는 것은 선의 세계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존경심 


 소설에서 싱클레어는 여러 인물에게 존경심을 느낍니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결국 내 안에서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존경했기 때문에 현실에 눈을 뜨고, 베크를 존경했기 때문에 향락과 술을 쫓았을 것입니다. 또 피스토리우스를 존경했기 때문에 사색과 철학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한 인물의 존경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양한 상황 속에서 경험하고 생각하며 존경하는 인물, 즉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바뀌기 마련입니다.  

 

 에바 부인에 대한 존경심은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사랑과 함께 공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외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며, 내면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히 내면적인 부분에서 존경심을 가질 때 그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하고 싶고, 닮아가고 싶다는 것은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영화를 볼 때 느끼는 전쟁의 허무함

 

 이야기의 후반부에서는 전쟁의 시작과 참전, 그리고 그 속에서 결말을 맺게 되는데요. 전쟁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항상 그런 장르의 영화를 볼 때, 삶의 소중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무래도 전쟁 영화에서는 사망자가 많이 나오게 되는데, 저는 그때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내 생각, 내 가치, 내 감정은 그 순간 모두 종료되는 것이 무섭고 허무합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하고 슬픈 감정이 듭니다. 그래서 더 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제 주변 사람이 전쟁을 겪고 그 속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처음 세상에 나와 읽힐 당시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그것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읽은 이 소설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싱클레어가 데미안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헤쳐나갈 것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문학에서 중요한 요소는 공감과 용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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