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by mingle

다른 사람에 비해 물고기를 접했던 순간들이 많다. 어렸을 적 아버지, 어머니는 생선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비록 살아있는 물고기는 아니었지만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기억한다. 매끈한 외피, 빛나는 색깔, 뚜렷한 눈빛, 각기 다른 생김새, 바다 냄새, 살아있던 것들의 생의 움직임 등 모두 생생하다. 지금까지 이런 물고기들이 다른 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도 어류라는 분류에 익숙한 사람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모두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던가(학교 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그 사실이 아니라 어류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특정 지어지고, 그 분류가 통용되고, 아닌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 분류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현상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가 의도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결론지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있을 수 있다기보다는 반드시 존재하겠구나 싶다. 이것을 인지하고 사는 것과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의 차이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의사결정하고 선택함에 있어서 큰 관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꽤나 순응하는 삶을 살았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교 때는 스펙을 열심히 쌓았고, 취업 준비를 철저히 했다. 쉬지 않고 공부했고, 쉬지 않고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없다. 후회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런 순응하는 삶을 살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란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렇지 않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삶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길을 열심히 따른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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