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헤어질 결심

너만큼은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다

by 밍글

나는 지독한 커피 예찬론자다.


직장인의 하루를 시작하는 모닝 아아는 물론이거니와 주말 동네를 산책할 때에도 근처 커피 잘하는 로스터리를 굳이굳이 찾아가려고 테이크아웃을 고려한 동선을 짠다.


여행을 갈 때면 그 동네 커피 맛집은 꼭 찾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블루보틀 커피는 샌프란시스코, 도쿄, 오사카는 물론이거니와 서울에 있는 모든 지점을 섭렵, 최근에 생긴 부산 민락 카페까지 순회를 마쳤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주로 산미가 풍부한, 가벼우면서도 향긋한 아이스 드립커피다.

최근엔 달달한 라떼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은 집근처 라떼 맛집을 순회하기도 했다.

에스프레소바에 눈을 뜬지는 꽤 되었지만 잘 하는 집이 드물어 자주 마시진 못한다.






지독하게 좋아서,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

커피가 나에게 약보단 독이 되기 쉽다는 걸.


매일을 숨가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의 생활 속에 커피 한잔은 마음의 '여유'를 주는듯 했지만 실제론 나의 신경 세포들을 더 큰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30대에 접어들어 쉽게 건조해지는 눈과 피부는 커피가 내 몸 안의 수분을 빨아들인 결과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운동을 병행한다 한들, 커피를 끊는 것이 내 건강을 회복하는 것에 더 확실한 효과를 가져다줄 것임을 많은 '커피 끊기' 후기들을 접하면서 기대해보게 되었다.








심지어 오늘도 나는 커피를 드링킹했다.


직장을 나가지 않는동안에도 카페인에 절여진 나의 뇌가 시켰나보다.

어느새 두 발이 먼저 카페를 향하고 있었다.




IMG_9838.HEIC (어제도 두잔을 마셨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모든 낙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런데 1년간 내가 마시는 커피가 최소 350잔, 두잔씩만 먹어도 700잔이 넘는다는 생각을 하자 문득 겁이 났다.


'내 몸이 평생 감당할 수 있는 카페인의 양을 이미 다 먹고도 남은 게 아닐까?'

'커피가 없던 시절에도 분명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이정도면 중독 증세 아닐까?'

화학적 각성이 아닌, 사고의 '각성'을 통해 나는 비로소 커피를 끊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다.




IMG_9856.HEIC 오래된 킷사텐 풍의 카페에 들어갔더니, '커피 예찬'론이 또 붙어있다




이러고 또 언제 어떻게 다시 커피를 찾게될지 모른다.

하지만 각성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듯 커피를 들이붓고 싶지 않아졌다.


내 몸이 피로할 땐, 쉬어야함을 알고 쉬어갈 것이다.

내 몸이 카페인을 찾을 땐, 금단현상임을 기억하고 대체재를 나에게 선물할 것이다.


내 몸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헤어질 결심이 헤어진 나날들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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