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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Oct 21. 2023

이방인이 사는 도시



글쓰기 모임에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글을 적어 달라는 숙제를 받았다.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외로운 기분을 느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나라에 산지는 어언 십 년이 되었고 이 도시에 산지는 삼 년 정도 되어가는데, 늘 이곳은 이렇고, 이곳의 사람들은 저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군가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곳에서 일을 해보지도 않았고, 연애를 해봤지만, 내 연애밖에 모르며,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해보지도 못했다. 이럴 때는 뿌리라는 것이 무시할 것은 아니구나 싶다. 태어나서 누군가의 양육을 받고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일터에도 나가고 누군가의 죽음도 경험한, 나의 삼십 년이 존재하는 곳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십 년을 산 이 나라에 대해서는 섣불리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십 년 간 이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의 문화적인 코드조차도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애매하게 친한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밥때가 되었는데도 궁둥이 붙이고 일어나지 않는 남편이 눈치 없는 것 같고, 밥때가 되었는데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린 건 없지만 식사하고 가시라는 말도 없이 같이 쫄쫄 굶고 있는 집주인도 야박한 것 같다. 혼자서 좌불안석이 되어 남편에게 빨리 가자고 눈치를 주지만, 프랑스 사람답게 간다고 일어서서도 삼십 분을 또 수다를 떤다. 남편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가면 늦게 나올수록 좋은 거라고 했다. 그것이 초대받은 시간이 매우 즐거웠음을 보여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란다.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특히 아이 있는 집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앉아 있는 건 예의도 아니고 눈치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여전히 밥때건 뭐던 상관없이 궁둥이 붙이고 수다 떠는 이들의 문화가 어렵다.


그런 내가 이 도시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늘 한쪽 구석에서 짐작만 한다. 그리고 틀린다. 내 눈에는 여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분명 누군가는 돈에 쫓기고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일을 할 것이다.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 따뜻할 수도 있고 사랑 앞에 거침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수줍을 수도 있다. 로맨틱해 보이지만 간을 배 밖으로 내놓은 남편도 보았고, 할 말 다 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의외로 수동적인 아내도 보았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를 보면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나는 이자벨 위페르가 소주를 마시는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한국 배우들은 맹물을 마셔도 소주 마시듯 찰지게 마시는데 이자벨 위페르는 맹물을 소주처럼 마시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아니, 소주의 맛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소주에는 맛도 맛이지만 한국의 정서가 녹아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마시는 척을 해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자벨 위페르는 세계가 인정한 연기파 배우인데도 소주 마시는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 관해서 쓰는 것이 두렵다.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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