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아무르 Oct 20. 2023

힘이 센 불완전함



언어는 힘이 세다. 힘이 세면 완전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언어는 불완전하다. 불완전하면서도 힘이 센 이유로 이 녀석은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 지인이 문득 내게 그랬다. 


“왜 사람이 세 살 미만의 기억이 별로 없는 줄 아세요?” 


그때 우리는 언어의 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불현듯 외쳤다.


“아, 설마…. 말을 잘하지 못해서요?” 

“맞아요. 그때까지는 언어능력이 불완전해서 그렇대요.” 


출처가 어디인지 묻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형의 것을 구체화하는 것이 언어이기는 하니 말이다. 


그렇게 언어는 대단한 역할을 하며 힘을 가진다. 사람들에게 기억, 감정, 가치 같은 것들을 전할 수 있게 해 주며 그것을 통해 인간은 관계를 형성한다. 문제는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언어 형식은 하나지만, 이것을 해석하는 방식은 가지각색이다. 이는 개인의 경험, 그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 주변인들에 의해 달라지곤 하는데 그렇다 보니 언어라는 녀석은 인간 사이에 오해나 갈등을 만들어내기에 십상이다. 선한 의도로 말했다 하더라도 그 언어의 형식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할 때는 유리 공예를 하듯 조심스러워야 하며 네 잎 클로버를 고르듯 단어들을 잘 고르고 버무려 써야 한다. 더불어 상대에 대한 이해와 수용 또한 무척 중요하다.


십 년간 프랑스 살면서 ‘사귄’ 프랑스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줄리아는 큰아이 친구의 엄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마주칠 일이 많았는데 말 없고 숫기 없는 내게 늘 먼저 안부를 묻는 사람이었다. 줄리아는 신기한 사람이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아는 사람이 무척 많다. 방과 후에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 가는 길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그런데 마음의 벽은 꽤 두껍다. 자기만의 공간을 확실히 해두고 그 이상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 시시콜콜한 자기 이야기를 잘해서 비밀이 없어 보이지만 진짜는 깊이 남겨두고 있는 사람이다. 


줄리아는 정의롭고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아파트 뒷문에 강아지들이 볼일을 보러 자주 오는데 한때 똥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만 불평했지만 줄리아는 유머러스한 경고문을 붙이고 강아지 용변시키는 사람을 보면 다가가 안부를 물으며 꼭 치우고 가라고 당부했다. 한 번은 같이 공원에 갔는데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내게는 무서운) 청소년에게 다가가 어린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 다른 곳에서 타라는 말을 하곤 씩씩대며 내게로 오며 외쳤다. 


“아니, 말이 안 돼. 여기서 타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애들 안 다치니까 걱정 말라네?” 


용감하지 못해 정의 실현을 못하는 나는 그런 줄리아가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마음을 활짝 열지는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줄리아 앞에서 울어버린 일이 있었다. 그것도 대낮의 놀이터에서. 


줄리아가 이사로 바쁠 때 줄리아의 아들을 몇 번 봐준 적이 있다. 줄리아는 바쁜 남편을 대신해 혼자서 짐 정리하고 집 청소를 했다. 그런 줄리아가 안쓰러워 몇 번 종일 아이를 봐주었는데 한참이 지나 그걸 잊을 때쯤 내게 선물꾸러미를 내밀었다. 나는 줄리아가 방금 건넨 케이크를 오물거리며 어린 둘째가 미끄럼틀 타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네가 나 많이 도와줬잖아.”


더 많은 설명을 들을 새도 없이 나는 입안의 케이크를 활짝 드러내며 울컥 눈물을 쏟았다. 줄리아는 놀랐고 나도 내가 황당했다. 아이 며칠 봐줘서 고맙다는 답례에 그렇게 울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는데. 나는 서둘러 입을 가리고 선물을 유모차에 놓은 뒤 밀려오는 감정과 눈물도 급하게 밀어 넣었다. 


당시의 나는 외로웠다. 장수의 요건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는 장수는 못 하겠다고 농담을 뱉던 입안에서 쓴맛을 느끼던 때였다. 줄리아의 작은 답례가 커다란 바위가 되어 가득 차 있던 내 슬픔에 던져진 것 같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일렁이던 슬픔이 넘쳐버린 것 같았다. 그 일은 십 년의 프랑스 생활에서 잊히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줄리아가 써준 엽서를 혼자 보고 나와 줄리아만의 우정 영역을 만들고 싶었지만 웃기게도 줄리아와 나를 잇기 위해서는 남편이라는 해설자가 필요했다. 남편이 줄리아의 필기체를 읽어주고 나서야 나는 줄리아의 다정한 응원과 공감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었다.


줄리아는 바로크 플루트를 연주하고 가르치던 사람인데 아이들을 낳으면서 연주를 그만두었고 나는 영화를 공부하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되며 영화에서 멀어졌다. 우리는 비슷한 상실과 욕구가 있었고 그것이 두꺼운 마음의 벽을 조금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그 뒤로 우리는 줄리아의 요청으로 한 두 번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아들 친구의 엄마 사이에 더 가까웠다. 


며칠 전, 줄리아가 갑자기 우리 집에 와도 되냐는 문자를 보냈다. 아이들도 학교 가고 없는 시간에 집에 가도 되냐는 연락은 처음이었고 줄리아답지도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줄리아는 크루아상을 사 왔다. 


“자, 이거 먹으라고 사 왔어.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해. 너 일하고 있었지. 내가 방해했네.” 


“아니야. 시간 많은데 뭘. 근데 무슨 일 있어?”


줄리아는 차 사고가 났다고 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사고였는데 사고 당사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울었다고 했다. 


“너 너무 지쳐서 그래. 내가 어제 그랬잖아. 나는 네가 어떻게 버티는지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진심이었다. 줄리아는 중학교 임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육아, 살림, 그리고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집 정리를 하려고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고 학생들 숙제 검사를 하려고 자정까지 일했다. 어이들 등하교는 등교 도우미에게 맡기고 어떨 때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태권도 하는 본인 아이들을 내게 맡기고 태권도하는 시간 동안 잠시 집에 가 빨래라도 돌리고 왔다. 


“너 좀 쉬어야 해.”


내 말에 줄리아는 갑자기 엉엉 울었다. 우는 줄리아는 처음 보았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줄리아가 우는 거면 정말 힘든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내 두꺼운 마음의 벽을 허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본능적으로 줄리아를 껴안고 괜찮아. 괜찮아. 네가 이제껏 너무 잘하려고 애써서 그래. 이제 조금 나눠서 하고 네 생각만 하는 날도 만들어보자,라고 말했다. 


줄리아는 엉엉 울다가 먼저 몸을 떼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줄리아에게 앉으라고 말하고 차를 한 잔 내어주었다. 줄리아는 두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농담하듯 너도 안겨서 울고 싶을 때 나한테 연락해,라고 말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울고 싶을 때 누구를 찾을 만큼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대답하지 못했고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 웃었다.


나는 십 년 동안 힘이 세지만 불완전한 언어 때문에 프랑스 사람을 ‘사귀어보지’ 못했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잘 고르고 다듬어도 갈등이나 오해가 생기는데, 유창하지 못한 프랑스어를 하는 나는 오죽했겠는가. 대부분은 프랑스 사람들이 나의 프랑스어를 기다려주지 못했다. 더불어 누군가는 내가 한 말의 뉘앙스를 오해했고 나도 마찬가지로 상대가 한 말의 뉘앙스를 오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줄리아와는 ‘사귐’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언어라는 도구 너머에 있는 진심이 통한 것 같다. 진심은 정말 통할까? 통한다는 말에는 쌍방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진심은 그 진심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통한다. 한때는 내가 이렇게 진심인데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진심이 통한다는 말은 정말일까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나의 연약한 말들에도 그 너머에 숨어있는 진심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십 년 만에 그런 사람을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