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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May 12. 2022

06. 다르다는 건 어떻다고 생각해?

그림책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다경아 안녕!


잘 지냈어? 프랑스 학교는 2주간의 방학에 돌입했어. 방학 첫 주에는 주노 친구를 초대해서 무사히(?) 보냈어. 그리고 이제야 네게 편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 프랑스 학교는 방학이 참 많아. 거의 한 달 반에 한 번씩 2주의 방학이 돌아오고, 여름에는 두 달의 방학이 있지. 게다가 수요일에는 학교를 안가. 그러니까 대충 24일 학교를 가고 2주를 쉬는 식이야.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적응할만하면 방학을 해서 늘어지고 다시 학교에 적응할 만하면 늘어지고를 반복해. 양육자는 조금 괴롭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행복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나는 사람이 아름다울 때 중 하나가 몰입하는 때라고 생각하거든?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그것을 이야기할 때 참 예뻐. 물론 좋아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네 편지를 읽으면서 네가 내 앞에서 신나서 이야기하는 상상을 했어. 네가 여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글로만 봐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걸 말하는 너를 직접 본다면 내 어깨가 다 들썩이겠다 생각했지. 아마 나는 입꼬리를 한가득 올리고 너를 바라봤을 거야. 덕분에 나도 신나는 마음을 한껏 느꼈어. 정말 고마워. 


네가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썼잖아. 그래서 ‘아, 다경이 의 정체성에는 ‘여행’이 들어 있구나.’ 생각했어.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는 어떤 단어들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지. 제일 처음 생각난 단어는 ‘다름’이었어. 나는 프랑스에 사는 한국 사람이잖아. 외모가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르지. 자라온 문화도 달라. 자연스럽게 하는 사고와 행동, 즉 내게 당연한 것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상하거나 낯선 것이 될 때가 있어. 육아도 그중 하나였지. 프랑스 사람들이 어른 위주의 육아를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아이 위주의 육아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생기거나 기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해 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어. 갓난아기 때부터 분리 수면을 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아이가 만 서너 살이 되도록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나는 아이를 과보호하는 사람이었고, 아이 있는 집끼리 모임이라도 하면 어른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 아이들은 대충 먹이고 만화를 틀어주거나, 혹은 아이를 감시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게는 이기적인 어른들 같았어. 프랑스에서는 공갈젖꼭지랑 애착 인형이 만 두세 살 까지는 거의 필수 품목인데 그것도 아이를 될 수 있는 한 빨리 그리고 수월하게 떼어놓기 위한 장치야. 그것들 없이 다른 노력을 하기에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지. 준호가 두 살 땐가 한국에 간 적이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 마다 아직도 공갈젖꼭지를 하냐고 빨리 떼라고 한 마디씩 하는데 이상하게 외로웠어. 프랑스에서도 혼자, 한국에서도 혼자인 느낌이었지. 나는 이런 다름 속에서 많은 갈등을 느꼈어. 


나는 구순열이라는 다름도 있어. 구순열은 태어날 때 입술과 인중이 갈라져서 태어나는 기형인데 생후 100일 정도 되면 봉합수술을 해. 벌어진 부분을 억지로 당겨서 꿰매는 거라 기형이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얼굴을 가졌지. 입술과 코가 비대칭이야. 지금은 중년이 되어서 이런 다름을 때문에 겪을 이야기가 별로 없지만 학창 시절에는 불편한 관심이나 놀림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이 어그러지기도 했어.


그리고 나의 다름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었어. 아이들은 대다수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두 가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두 가지 인종의 외모가 섞여 있으며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지. 


이 외에도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단어들은 많지만 굳이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보면 아마도 내게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나 봐. 나의 다름 때문에 누군가에게 배척 당해보고, 그러고 나서 나와 똑같은 다름을 가진 아이들을 낳아보니까 ‘다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어.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다름’에 대한 건강한 시각을 심어주면 좋겠다 생각해서 꽤 다양한 책을 함께 보았어. 


그중에 소개해주고 싶은 책은 요시타케 신스케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야. 지난번에도 이 작가의 책을 소개했는데, 또 나와버렸다. 아마 다음에 또 나올지도 몰라. 나와 준호가 엄청난 팬이거든! 이 책은 이토 아사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책을 바탕으로 요시타케 신스케가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토 아사와 의견을 나누면서 만들었대. 온갖 별을 여행하는 우주 비행사가 주인공인데 눈이 뒤에도 있어서 앞 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별에 도착하면서 책이 시작돼.



이 별의 사람들은 눈이 두 개 ‘밖에’ 없어서 뒤를 못 보는 우주 비행사를 불쌍하게 여기고, 지나친 배려를 하는데 그때 우주 비행사가 말해. “'보이는 범위’가 다를 뿐인데 모두 굉장히 신경 써 줘서 기분이 이상했어.”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다름을 대하는 좋은 태도는 다름을 다름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 다름이나 차이라는 말은 ‘나와 다르다’는 데서 시작해서 의도치 않은 차별을 만들 수도 있지만 다양함이라는 말은 서로가 각자 고유한 모양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다름이 아닌 다양함이라고 느꼈으면 좋겠어. 언젠가 또래 집단과 타인의 시선이 엄청 중요해지는 사춘기가 되면 분명 남들과 다른 외모를 보면서 고민하게 되는 날이 올 텐데, 그것을 큰 키, 두툼한 손 같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들과 달라서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기 힘들 것 같아. 잘 받아들인 편인 나도 그런 감정을 가진 적이 있으니 미리 앞서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그래도 아이들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야겠지? 그러하다! 으라차차!



이 책에는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전혀 달라.”라는 문구가 나와. 나는 아이들에게 다른 건 좋은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세상을 느끼는 방식을 다르게 가져볼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다름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르다는 것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은 아니야. 꼭 장애나 기형을 가질 필요는 없어. 우리는 원래 모두 조금씩 다르니까.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키가 작고, 누구는 어른이고, 누구는 아이인 것처럼 말이야. 



이 책에서는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끌리거나 편안하게 느끼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해.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과도 생각을 나누어 보면 ‘우아-!’ 하는 재미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름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응원해주지. 나는 무조건 끼리끼리 뭉치는 것은 나쁘고 나랑 다른 사람에게 배려를 보이라는 말보다 이런 응원이 더 자연스럽고 좋았어. 



예전에 해나 개즈비의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라는 스탠드 업 코미디를 본 적이 있어. 해나 개즈비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데 자신의 다름으로 인해 겪은 이야기를 풍자와 유머를 섞어 이야기해. 처음에는 동성 간의 사랑을 향한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가 나중에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같기도 해. 그런데 결국 그가 하는 이야기는 다름과 다양성이라는 걸 마지막에 알게 되었어. 우리는 이성을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혹은 동성을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한 인간이라는 점 말이야. 여기서 해나 개즈비가 이런 말을 해. “차이를 대면하면 새로운 걸 배우지만 차이를 외면하면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다름을 다양함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의 다름에 관심을 가지며 거기서 많은 ‘우아-!’를 발견하면 좋겠어. 그러려면 나부터 많은 ‘우아-!’들을 만나야겠지? 


다경이 와 우주에게도 수많은 ‘우아-!’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마칠게.


곧 또 이야기해!


2022년 2월 20일

민영.



저자 : 요시타케 신스케

옮긴이 : 고향옥

토토북 | 2019년


#다름 #차이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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