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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Jun 09. 2022

10. 어른도 아이도 필요한 여정,
감정을 찾아서.

그림책 <색깔 괴물>

다경아,


너와 나는 톱니바퀴 같다는 생각을 했어. 너는 해결사, 나는 발 동동이거든! 우리는 다르지만 네 말 대로 그 다른 구석들이 서로를 채워주는 것 같아. 그래서 편지 쓰는 것이 재미있나 보다.


나는 네 편지를 보고 준호와 나의 길었던 여정, ‘감정을 찾아서’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준호는 섬세하고 예민해서 느끼는 감정이 풍부하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극적이었어. 감정을 막 배우기 시작한 만 두세 살 때는 준호도 나도 참 힘들었는데, 둘이서 오만 순간 다 겪으며 만 다섯 살까지 오니까 서로 많이 편해진 것 같아. 이 여정에는 일등공신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색깔 괴물>이라는 책이야. 이 책은 아이들에게 감정의 성질을 설명해주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줘. 즉, 아이가 막연하게 기분이 불편하다, 좋다,라고 느끼던 것에 기쁨, 슬픔, 화, 두려움, 평온함,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도와주지. 물론 설명이 불가한 감정들도 많기 때문에 감정들이 뒤섞인 뒤죽박죽 감정도 있다고 이야기해줘. 각 감정에는 색깔이 있는데, 이게 준호한테는 정말 좋았던 것 같아. 감정을 색깔로 시각화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았어. 책의 내용은 단순해. 

컬러 몬스터가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 왜 인지는 모르지. 그저 뒤죽박죽이야. 그때 친구가 나타나서 감정을 알아보고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해. 

첫 번째 감정은 기쁨이야. 나는 이 책이 감정을 묘사하는 방식이 참 좋아. 감정을 시각화해서 설명하고,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어떤 것들이 하고 싶어 지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아이들이 이해하기가 참 쉽거든. 


기쁨은 해님 같이 빛나고 꿀벌처럼 심장을 떨리게 해. 네가 기쁠 때면, 너는 마구 웃고 싶고 폴짝폴짝 뛰고 싶어 지며, 춤추고 싶어 지지. 그리고 네 즐거움을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 전부와 나누고 싶어 져.


내가 한국에 번역 출간된 책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출간된 책만 가지고 있어서 기쁨 부분의 일부를 어설프지만 직접 번역해봤어. 한국 책은 아마 더 멋지게 번역되어 있을 거야. 정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 있지?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팝업 북인데 그림도 참 좋아.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 같거든. 준호가 진짜 진짜 아끼는 책이야.

자, 이렇게 알 수 없었던 감정들에 이름을 붙였으니 이제는 정리를 할 차례야. 이렇게 감정을 종류별로 정리해두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이해하기 훨씬 쉽고 그러다 보면 그것을 해소하는 일도 수월해지지. 

그런데 하나 빠진 것이 있네? 제일 중요한 사랑이야. 헤헤. 


준호랑 이 책을 수 차례 보고 이 책에 관련된 보드게임도 샀어. 거기에는 감정 색깔 폼폼이랑 감정의 이름이 적힌 병들이 들어있어. 부정적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요가 카드,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 카드도 있는데, 준호는 특히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데 감정 카드와 폼폼이를 자주 사용했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만 다섯 살이 된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울고 소리 지르며 발 구르던 시간이 많이 짧아졌어. 나는 준호가 화내는 동안, 준호가 화난 이유에 대해 말로 대신 설명해주고 화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니면 좋겠다고 말해. 그래도 아이가 계속 발을 구르면, 밖일 경우는 무시하고 집일 경우는 방에 들어가서 화난 감정을 좀 가라앉히고 오라고 하지. 그냥 무조건 들어가라고는 하지 않고, 네가 좋아하는 레고 마리오 하면서 마음 좀 가라앉히고 오라고 해. 그러면 당장에 방으로 가진 않지만 어쨌든 언젠가는 들어가서 레고 마리오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더라고. 이제는 화가 나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공식처럼 인지되어 있어. 감정의 폭풍우가 지나가면 준호가 마음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버리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나 속상해.”, “화났어.” 같은 말을 하면서 자기 마음을 알아 달라고 해. 그럴 때는 상황을 묻고 아이의 말을 들으며 공감해주지. 두 번째는 자기 마음을 표현한 그림을 그리면서 긴장을 풀어. 신기하게도 그림을 그리고 내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준호의 기분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 세 번째는 <색깔 괴물> 보드게임에 있는 감정 카드 중에 자기감정을 나타내는 카드를 냉장고에 붙이거나 감정 폼폼이를 가족 구성원에게 주면서 ‘이게 내 감정이야.’라고 해. 주로 빨간색 (화)을 많이 건네지. 근데 마구 화내다가 폼폼이 하나 쓰윽 건네는 모습은 정말 귀여워. 혼자서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모습도 대견하고. 사실 어른에게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단시간에 진정시키는 것은 어렵잖아. 

이건 준호가 슬픈 감정이 든다며 한 일들이야. 집안에서 온갖 파란색 (슬픔)만 찾아서 모으고, 도화지에 온통 파란색 동그라미를 그려 두곤 자기감정이라고 보여주더라. 준호가 감정적인 편이라 힘들 때가 많은데, 그나마 이렇게 자기감정을 들여다보고 내게 표현해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럴 때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더라도 일단은 잘 수용해주자 다짐하기도 해. 


감정의 색깔이 꼭 부정적인 감정에만 쓰이는 건 아니야.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내게 분홍색 (사랑) 폼폼이를 하나 건네며 가방에 넣고 가라고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을 설명하는데 쓰기도 해. 


어느 날은 준호의 유치원 가방에 선생님 메시지가 있나 찾아보는데 돌돌 말린 종이 한 장이 보이더라고. 펴보니 알록달록 예쁜 그림이었어. 


“준호야. 이거 오세안이 준거야?”


오세안은 준호랑 같은 반 여자아이인데, 둘이서 이따금 그림을 주고받아.


“응.”

“좋겠다! 예쁜데? 넌 어떻게 생각해?”

“이 부분은 괜찮은데, 이 부분은 별로야.”


준호는 그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사라졌어. 준호는 한참을 방에서 혼자 사부작 거리 더니 감정 카드랑 감정 폼폼이를 넣은 병을 들고 와서는 오늘 학교에서 느낀 감정이라고 했어. 병에는 다섯 가지 감정의 색깔이 골고루 섞여 있었고 카드는 온갖 감정이 섞여서 혼란스럽다는 그림이 있는 것을 골라왔지.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감정을 느꼈어? 검은색 (두려움)은 왜 느낀 거야?”


준호는 학습 시간에 옆 친구와 요정이 쓰는 언어로 속삭였는데 선생님이 그걸 듣고 친구를 불러 주의를 주는 바람에 벌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고 말했어. 


“근데 선생님이 준호는 안 불렀어.”

“다행이네. 그럼 빨간색 (화)은?”

“선생님이 호방을 불렀을 때 무서우면서도 화가 났어. 벌 받으면 화 날 것 같았어.”

“그랬구나. 그러면 초록색 (평온함)은?”

“조용히 쉬는 시간에 평온한 마음이 들었어.” (프랑스 유치원은 점심시간 후에 교실을 어둡게 해 두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있어.)

“그러면 노란색 (즐거움)은?”

“그건 오세안이 그림을 줘서.”

“분홍색 (사랑)은?”

“그건 오세안이 그림을 줘서 오세안이야.”


아까는 시큰둥해 놓고 세상 좋은 감정은 다 오세안에게 느낀 준호가 너무 귀여운 거 있지. 


요즘은 조금 컸다고 더 다양한 감정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어. 얼마 전에는 긴장하는 마음은 무슨 색깔인지 묻더라. 


“글쎄. 모르겠는데? 준호가 정해볼래?”

“음… 주황색?”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긴장하는 마음은 주황색이 되었어. 나, 네가 준호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준 부분이 참 와닿았어. 자기만의 방식. 그것을 찾도록 밑거름을 듬뿍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닐까 생각했어.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잘 소화하고 해소하는 것이 자기만의 방식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 같아. 


2022.4.24

오늘도 우리의 인내에 건배를 외치며,

민영





저자 : 아나 예나스

역자 : 홍연미


웅진북클럽 



#감정 #조절 #표현






** 한국에서는 <알록달록 색깔 괴물> (한국 가드너), <컬러 몬스터 : 감정의 색깔> (청어람)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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