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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아무르 Jun 23. 2022

12. 아이다움?

그림책 <에밀과 다른 사람들 Émile et les aures>

“그래, 우리 모두 이따금 그런 날이 있지. 하지만 내일은 즐거운 날이 될 거야!”


친애하는 다경 씨, 아이의 화를 없애는 데만 급급했던 이 엄마 반성합니다. 하하.


그러게 모두가 그런 날들이 있는데 왜 아이만 유독 기분이 좋지 않다고 혼이 나게 될까. 이 대사를 꼭 기억해 두었다가 준호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써봐야겠어. 요즘 준호가 사춘기 아이처럼 계속 부루퉁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내게 그런 말을 해.


“엄마, 기분이 나쁜데 이유가 없어. 왜 기분 나쁜지 모르겠어.”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사람인지라 그런 날들이 있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럴 때 네가 알려준 대사를 외쳐야겠어. 이 말에 정말 딱 어울리는 대답 같아.


나는 오늘 네게 준호보다 더 부루퉁한 아이가 나오는 그림책을 소개해보려고 해. 에밀이라는 남자아이가 나오는 그림책 시리즈인데,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귀여운 그림책이야. 이 시리즈를 처음 만난 건 <에밀과 다른 사람들 (ÉMILE et les autres)>을 통해서야. 당시의 준호는 무리에 섞여 노는 걸 어려워하거나 거부하는 편이었어. 그런데 나는 아이에게 섞여서 놀라고 부추기는 것보다 아이의 그런 성향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어디를 가든 사교적인 사람들이 사랑을 받고 그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람을 사귀는 걸 어려워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내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질 못 했어. 내향적인 내 성격이 노력을 하면 바뀔 거라고 믿었고 억지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려고 무척 애를 썼지. 마치 나쁜 습관을 고치듯 그렇게 내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말이야. 그런데 나는 그 시간들이 참 힘들었어. 나를 사랑할 수 없어서 힘들었고, 노력은 하는데 잘 바뀌지 않는 나를 무능하게 느끼는 나 자신도 싫었지. 그래서 준호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어.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아니 부모 마음이 간사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무리에서 혼자 겉돌며 어울리지 못하는 준호를 보면 괜히 조바심이 났어. 아이가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 생각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가지지는 않을지, 내가 나서서 도와주고 좀 부추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얘는 왜 내 뒤에만 숨어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할까, 무난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하면서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가졌어. 이렇게 모순적인 두 마음을 가지고 괴로워하던 어느 날! 운명과 같이 <에밀과 다른 사람들>을 만났어. 이 책은 내게 커다란 위로와 안도감을 주었어.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준호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에밀 시리즈를 다 좋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에밀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해.


오늘…  에밀은 놀아야 한다.


“놀아야 한다.” 아이에게 노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다니! 정말 재밌지? 에밀은 도통 나가서 놀고 싶지가 않아. 싫다는 에밀에게 엄마가 그러지.


아니, 에밀, 가야 해! 토요일인데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으면 안 되지!   게다가 나가면 네 친구들도 있을 거야!


에밀의 표정이 보여? 나 좀 내버려두라는 저 단조로운 표정. 에밀은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그려지는 아이의 모습을 하지 않았어. 아이인 데도 대부분의 일에 에너지가 낮고 시니컬하지. 관심도 제한적인데 그래도 그 제한적인 일에는 엄청 열심인 아이야. 에밀은 결국 엄마 등쌀에 못 이겨 놀이터로 가기는 해.


우아, 에밀, 넌 좋겠다, 날씨가 이렇게 좋다니. 저기 봐, 친구들 있다! 좋지, 그렇지?   저기 네 친구들 다 있네.


에밀의 눈에 비친 친구들의 모습 좀 봐! 에밀에게는 친구들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또래의 아이들이 맹하고, 재미없는 존재들 로만 보여.

친절해 보이는 할머니 옆에 앉기로 했다. 완벽하다.

에밀은 도저히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은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엄마가 챙겨 주신 간식을 먹기로 해. 어디에 앉을까 자리를 물색하다가 한 할머니 옆에 앉기로 하지.


할머니는 평화롭게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아이의 공이 굴러와 비둘기들을 다 날아가게 해. 푸덕거리는 비둘기 때문에 놀란 할머니는 화가 나서 아이를 츗춧츗하며 쫓아내지. 그리고 옆에 있던 에밀까지 벌레 쫓든 쫓아내려 했어. 에밀의 표정 변화를 살펴보면 재미있어. 할머니가 아이를 쫓아낼 때는 놀라다가 자기를 쫓아내자 씨익 웃지. 아마도 동지애를 느꼈을지도 몰라. 아하, 이 할머니도 나처럼 아이들을 싫어하는구나!


그리고 에밀은 결국 놀이터에 나가서 친구를 사귀게 돼. 바로 옆에 앉은 할머니 말이지. 둘은 공통점이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을 거야. 나는 에밀이 참 좋아.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전혀 의심하지 않아. 남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대신, 엄마가 아무리 뭐라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해나가거든. 어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다움이 있잖아. 해맑고 귀여우며 수줍을 순 있어도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또래 친구들과 재밌게 놀며 생활규칙을 배우는 아이.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어. 대신 에밀다움이 있지.


아무튼,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던가! 친구 따위,라고 생각하던 에밀은 엄마 덕에 좋은 친구를 하나 만들게 돼. 그리고 다음엔 그 친구와 무얼 하고 놀았는지 알아?


오늘,  에밀은 장례식에 갈 것이다.


바로 장례식이야! <에밀, 장례식에 참석하다>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그 책을 집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 장례식을 이야기하다니. 그것도 시니컬한 에밀이? 어떻게 이야기할까 너무 궁금했어. 게다가 준호가 죽음에 대한 질문을 자주 하고 그것에 대해 무척 불안해하던 시기였거든. 사람은 왜 늙는지, 꼭 늙어야 하는지, 늙지 않는 방법은 없는지, 엄마, 아빠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불안하다던지. 이런 말들을 하며 우는 아이를 보면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잘 몰랐던 내게 무척 반가운 책이었어. 에밀의 장례식 방문이 어땠는지 궁금하지! 그건 다음 편지에 이야기해볼게.



 
2022.6.3

너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민영






글 : 방썽 퀴베이에 Vincent Cuvellier

그림 : 호넝 바델 Ronan Badel


갈리마르 쥬네스 지불레 Gallimard Jeunesse Giboulées | 2014


#우정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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