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렇게 좋은지 몰랐지
찬바람의 기세가 등등하던 때, 조그맣게 꽃망울이 맺히던 순간부터 나와 희는 언제 꽃송이를 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며 나무를 들여다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의 솜털처럼 보송보송했던 꽃망울이 터지고 어느새 나무에는 하얀색 목련꽃이 만개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와 춤을 추듯 나풀거리는 꽃잎에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목련 아래'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새하얀 목련의 꽃잎이 누렇게 변해가고 나무 아래로 코 푼 휴지처럼 뚝뚝 떨어지고 벚꽃이 피던 때, 목련 나무 근처를 지나가던 계장님이 올해는 일이 바빠 목련이 피는 것도 못 봤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는 올 겨울부터 희와 꽃망울이 터지기만을 기다렸다 원 없이 꽃구경을 했다는 말을 전했다. 요즘은 꽃이 피는 게 너무 예뻐서 회사 근처를 산책한다는 말도 함께. 계장님은 조금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벌써부터 자연을 좋아하면 어떡해. 그거 나이 든 건데? 아직 그럴 나이 아니잖아."라고 했다.
불과 3년 전 정도만 해도 꽃이나 나무, 자연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자연의 풍경이 경이롭고 관찰하고 싶어 진다. 정말 어른들의 말씀대로 늙어서 나의 취향이 변하는 건가?
변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릴 때, 나는 미역국을 제외한 국은 먹지도 않았다. 소위 급식이로 불리던 시절에는 아예 식판에 국을 받지 않았다. 국 없이도 밥을 잘 먹었고, 국에 들어간 파나 양파 같은 채소도 싫었으니까. 지금은? 국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최애 음식은 국밥이다. 삼시세끼 국밥을 먹으래도 먹을 수 있다. 뜨끈한 청국장 위에 김치를 올려 먹으면? 죽음이다. 반찬을 먹을 때도 골라먹던 채소는? 이미 파 기름의 맛을 알아버렸다. 반찬과 요리에 들어간 채소가 주는 단맛은 최고다. 식성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릴 때 몰랐지만 이제는 너무 잘 알겠는 게 또 있다. 바로 투피엠... 우리집(언젠가 한 번 쓰고 싶은 주제의 글이었지만, 투피엠이 불을 질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돌 덕질을 한 짬밥 덕에 웬만한 아이돌은 다 알고 적당히 좋아하며 지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투피엠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대놓고 "나 짐승이야!!!!!" 하며 찢어발기는 셔츠, 울끈불끈 한 근육들. 투피엠은 내게 조금 과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연히 본 투피엠의 우리집 무대를 본 후 어떤 댓글을 빌려 말하자면, 투피엠 팬들이 미워졌다. 이 좋은 걸 자기들끼리만 봤다고? 그때는 몰랐던 어른 남자의 섹시한 매력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셔츠는 자고로 터질 것처럼 팽팽해야지, 그렇고말고. 1일 3깡이 아니라, 1일 3우리집을 하는 중이다. 특히 우영은 상모 맛집이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들이 그냥 커피라면, 투피엠은 TOP다. 사랑합니다 투피엠.
별안간 덕질과 고백의 현장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나의 취향은 나날이 변해가고 있다. 자연이 좋고, 국이 없으면 밥을 못 먹고, 곱상한 것보다 짐승돌에 눈길이 가는 나.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바뀐 내 취향에 너무나 쉽게 "나이 들어서 그래." 혹은 "늙어서 그래!"라고 말한다.
『내게는 홍시뿐이야』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외삼촌에게 "올해는 유별나게 꽃이 좋아. 나도 늙나 봐."라고 말했더니, "늙는 게 아니라 뒤늦은 발견이야."라는 답장이 날아왔고, 나는 그 '뒤늦은 발견'을 오래 곱씹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과 배우는 것이 많아지기 마련이니 사람의 취향이 변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너무 쉽게 변한 취향을 늙어서 그렇다는 말로 퉁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삼촌의 말대로 우리의 취향이 변한 건 우리가 늙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조금은 뒤늦게 어떤 것을 발견했을 뿐인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