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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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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Nov 01. 2023

복숭아밭 거미줄

복숭아나무 가지치기와 유인작업을 끝내고 보니 우리가 유인줄로 이리저리 묶어 놓은 모양새가 마치 거미줄을 친 듯 얽히고설켜 있다.



처음부터 키울 나무를 남겨 놓고 나머지를 잘라야 했는데, 한 가지가 죽으면 어쩌나 싶어서 세 가지씩 남겨 놓았다.




가을 전정 때 상황을 보니 세 가지가 모두 비슷하게 자라서 굵어진 두 가지를 잘라 내려니 맘이 너무 아프다. 잘릴 가지가 없었다면 더 크고 튼튼하게 자랐을 나무들이다.



500m 유인줄 두 박스를 다 사용하고 하나를 더 사러 갔더니 복숭아나무가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거냐고 묻는다.


"우리가 솜씨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라고 말해도 이유를 알겠다는 듯 웃는다.


기둥에 두 번만 돌려도 지탱할 것을 네 번 이상 돌려서 묶어 놓은 모양새는 나무를 묶은 것인지 기둥을 묶은 것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무가 부드러워서 유인해 주면 원하는 방향대로 자란다는 것이다. 힘이 너무 세서 굽혀지지 않는 가지는 측지로 남기지 말고 잘라야 한다는 것, 뿌리 쪽 가지가 더 강하게 자란다는 기부우세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말 안 듣고 고집 센 우리 둘째도 살살 달래서 좋은 방향으로 자라도록 다독이고 다독이느라 나의 잔소리가 복숭아밭 거미줄 쳐진 듯이 촘촘히 엉키고 있다.


둘째도 자랄 대로 자라서 제 고집이 세졌다. 어릴 때부터 쉼없는 엄마의 잔소리에 내성이 생겨서인지 드센 복숭아나무처럼 휘어지지 않는다. 이젠 엄마가 유인줄 역할을 하기에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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