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옅어지고 있는 자리에 성큼, 겨울이 들어차고 있다. 손에 잡히는 옷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마음은 움츠려진다.
그냥 천사라고 부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결혼 후에 남편의 친구 부인으로 만난 그는 나보다 한 살 위인데도 더 나를 챙겨 주는 너그러운 친구다.
멀리 살다가 올해, 근처로 이사 왔다.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 못해도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다.
며칠 전에 잠깐 만났는데 국화를 한 묶음 선물해 줬다.자기 언니네 정원에서 꺾어 왔다는데, 은은한 향이나 밝은 색깔이 딱 그 친구다.거실에 두었더니 집안이 밝아진 것 같아 마음도 환해졌다.
함께 농장에 들렀다. 오랜만에 블루베리 나무를 보고 많이 자랐다고 감탄한다. 농장 초창기에 풀을 매 준 경험이 있는 친구가 금세 풀을 뽑으며 나무들을 칭찬한다.
텃밭은 하우스 안이라서 풋고추가 싱싱하다. 청양고추랑 오이고추, 아기 주먹만큼 뿌리가 자란 열무도 솎아서 나눴다. 별 것은 아니지만 싱싱한 채소들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친구다.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지만,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신혼부터 10년 넘게 한 아파트에 살면서 의지하고 살았었다. 타향이라 친구하나 없던 내게 의지처가 되어 준 친구다. 노모님 모시며 아이들 키우느라 몸살이 나서 누워 있을 때, 흑임자 죽을 만들어 온 사람도 그였고,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린아이들을 맡아 준 이도 그였다.
그저 천사려니, 보살이려니 그렇게 믿고 있다. 언제나 내 마음에 환한 빛인 친구도 이 가을을 잘 넘기고 늘 평안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