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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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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Nov 10. 2023

노란 국화 같은 사람

가을 옅어지고 있는 자리에 성큼, 겨울이 들어차고 있다. 손에 잡히는 옷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마음은 움츠려진다.



그냥 천사라고 부르고 싶은 친구가 있다. 결혼 후에 남편의 친구 부인으로 만난 그는 나보다 한 살 위인데도 더 나를 챙겨 주는 너그러운 친구다.



멀리 살다가 올해, 근처로 이사 왔다. 서로 바빠서 잘 만나지 못해도 친구가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하다.



며칠 전에 잠깐 만났는데 국화를 한 묶음 선물해 줬다. 자기 언니네 정원에서 꺾어 왔다는데, 은은한 향이나 밝은 색깔이 딱 그 친구다.  거실에 두었더니 집안이 밝아진 것 같아 마음도 환해졌다.



함께 농장에 들렀다. 오랜만에 블루베리 나무를 보고 많이 자랐다고 감탄한다. 농장 초창기에 풀을 매 준 경험이 있는 친구가 금세 풀을 뽑으며 나무들을 칭찬한다.



텃밭은 하우스 안이라서 풋고추가 싱싱하다. 청양고추랑 오이고추, 아기 주먹만큼 뿌리가 자란 열무도 솎아서 나눴다. 별 것은 아니지만 싱싱한 채소들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한 친구다.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지만,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하다.



신혼부터 10년 넘게 한 아파트에 살면서 의지하고 살았었다. 타향이라 친구하나 없던 내게 의지처가 되어 준 친구다. 노모님 모시며 아이들 키우느라 몸살이 나서 누워 있을 때, 흑임자 죽을 만들어 온 사람도 그였고,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린아이들을 맡아 준 이도 그였다.



그저 천사려니, 보살이려니 그렇게 믿고 있다. 언제나 내 마음에 환한 빛인 친구도 이 가을을 잘 넘기고 늘 평안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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