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달력이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거린다. 희망이라고, 아직 한 장이나 남아 있다고 억지를 부려본들 저절로 움츠러드는 몸과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엄마의 껌딱지였던 둘째가 늦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엄마 곁을 떠나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안방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 항상 둘째의 방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곧장 달려갈 수 있어야 했다. 안방과 둘째의 방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침대에서 한참을 놀다가 자는 둘째는 엄마의 굿 나이트 키스를 받아야 잠을 잤다. 잠꼬대라도 할라치면 달려갔고, 조용해도 잘 자는지, 열은 없는지 이마를 짚어 보고, 이불을 덮어 주는 등 보통의 부모들이 하는 일이다.
둘째의 경우는 성인의 나이가 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둘째가 며칠 전부터 형의 방에서 잠자기 시작했다. 한참 혼잣말을 하다 잠드는 둘째를 어서 자자고 다독이는 엄마의 말이 귀찮은 모양이다. 타지로 떠난 형의 방이 일 년 넘게 비어 있었지만, 제 방에서 잠을 잤던 둘째다.
작은 걸음으로 열 발짝 독립한 셈이다. 둘째의 재잘거림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조용히 둘째가 있는 방을 들여다보면, 유튜브를 보고 있다가 "엄마, 방으로 가세요."라고 혼자 있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만큼의 독립을 반겨야 할지 난감하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자기 아이들도 방에 틀어박혀 안 나온다고 둘째의 사춘기를 축하한다고 말한다.
사실, 첫째가 그런 시기를 지날 때도 당혹스럽기는 했었지만 심한 편은 아니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동굴은 필요한 법이라지만, 둘째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사건은 상상해보지 않아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유튜브는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휴대전화로 아무거나 누르고 검색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내 통제의 한계를 거부한 둘째가 그만큼 성장했다고, 그렇게 커 나가는 거라고 믿어야겠지.
사춘기를 이기는 것이 갱년기라는데 자꾸만 기운이 빠진다. 둘째한테는 영원히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가을 제대로다. 아니, 이제 겨울 제대로다. 추운 계절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훈훈한 사랑을 퍼 올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