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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y 06. 2024

그만이 할 수 있는 위로의 방식

레이먼드 카버 소설집 『대성당』 (문학동네, 2023)중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고     



1980년대 미국 단편 소설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체호프’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작가다. 1938년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제재소, 약국, 병원 등에서 일하며 틈틈이 문예 창작 수업을 받는다. 1959년 주립대학에서 문학적 스승인 존 가드너를 만나게 된다. 1967년 그의 작가로서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편집자 고든 리시를 만난다. - 작가소개에서 편집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은 작가 자신이 고집했던 소설의 원본이 출간된 책이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편집자 버전으로 출간된 책이다. 레이먼드 카버가 어렵게 글을 써 나가고 있을 때, 고든 리시는 유명한 편집자의 입장이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을 출간하려고 할 때, 열린 결말을 주장하며 레이먼드 카버와 서신 왕래를 하면서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편집자의 주장에 따라 출간된 책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출간되고 큰 성공을 거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편집자 버전은 「목욕」이다. 「목욕」은 짧은 분량이면서도 미스터리적 측면을 강조해서 독자 해석의 폭을 넓힌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 더 좋았다. 잔잔한 감동과 설명으로 서사가 밝혀지는 것이 더 좋았던 이유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성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단편집들은 여러 편의 길이가 비슷한 것이 통상이다. 『대성당』은 분량이 길고, 짧은 것이 들쑥날쑥하다. 작가가 분량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글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앤은 여덟 살 아들 스코티의 생일을 앞두고 있다. 멋진 케이크를 주문한다. 스코티는 학교 가는 길에 친구들과 파티할 생각에 발을 헛디뎌 차도로 빠지고 달려오던 차에 치인다. 잠깐 쓰러졌다 일어난 스코티는 학교생활을 마치고, 밤에 집에 와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고 오랜 수면 상태에 빠진다. 의사는 계속 좋은 징조라고 긍정적인 말을 해준다.    

  


하워드는 아들 스코티의 병원에 들렀다가 집에 왔다. 전화가 걸려 온다.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빵집 주인은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하워드는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는다.

     


(서로의 입장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답한 대화와 상황이 이어진다. 하워드는 아들이 병원에 있는데 장난 전화가 걸려 와 화가 났고, 빵집 주인은 주문해 놓은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전화했는데 소리를 지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워드가 병원으로 돌아왔지만, 스코티는 변화 없이 잠들어 있다. 의사는 여전히 스코티가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워드는 앤이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쉬다 오기를 바란다. 앤은 망설이다가 혹시, 자신이 이 자리에 없으면 스코티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에 간다.   

   


집에 가는 길에 병원 수술실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프랭클린 가족을 만난다. 앤은 자신과 같은 입장의 그 사람들을 붙잡고 스코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크랭클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다. 나중에 프랭클린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의 내용과 큰 상관이 없는 내용을 왜 끼워 넣었는지 궁금했지만, 중요한 복선이었다.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 프랭클린의 죽음이 스코티의 죽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앤이 집에 도착해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스코티의 문제로 전화했다고 말한다. 스코티를 잊었느냐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자꾸만 걸려 오는 전화벨 소리에 얼마나 놀랐을까?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라면 두 가지 소식이 있을 텐데 싶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을까. 책을 읽는 나조차도 떨리는 마음이었다.)    



 

앤은 병원으로 돌아가지만, 스코티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검사를 받으러 다녀온 후, 사망한다. 병원 절차상, 보호자가 계속 병원에 있을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온 부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전화가 또다시 걸려 온다.      



(아이를 잃은 아픔을 겪은 부부의 심정보다 더 처참한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들의 참혹한 마음을 감히 누가 짐작이나마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주인공들은 어찌 보면,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억누르고 있다.)     



앤은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 주인이 자신들을 괴롭히려고 전화한다고 생각하고 빵집을 찾아간다. 빵집 주인에게 스코티의 죽음을 알리자, 그는 몰랐다며 진심으로 사과한다. 자리에 앉도록 하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며 갓 구운 롤빵을 건넨다.      



빵집 주인 또한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빵을 구우며, 다른 이들의 축하를 위해 케이크를 굽는 사람이었다. 빵집 주인은 외로움에 대하여, 중년 이후를 아이 없이 보내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날이 밝도록 빵을 먹으며 떠날 줄을 몰랐다.   


   

(제목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위로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의 소통을 통해서 위로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레이먼드 카버 방식의 결말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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