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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un 05. 2024

아픈 이들을 품어 준 산

순창군 회문산을 가다

휴가의 유혹을 주 1회 연재하다 보니, 매주 여행을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지난 여행을 돌아보며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지가 산이다. 남편이 산을 좋아해서 가족들도 산을 많이 가게 되었다. 어렵게 올라 간 산들이지만 등산했던 산의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산정상에서 본 풍경들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고 다시 산을 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오늘은 전북 순창군 회문산 이야기다.



회문산은 동학 혁명과 한말의 일제 침략에 항거하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돈헌(遯軒) 임병찬(林秉瓚), 양윤숙(楊允淑) 의병 대장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여수·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어 총격이 벌어지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빨치산의 근거지로서 뼈아픈 역사가 깃든 산이기도 하다. 100만 권의 책이 팔려 화제가 되고, 관객 70만 명을 기록했던 영화 「남부군」의 빨치산 활동 무대가 바로 회문산 주변이다. 지금은 이들의 근거지였던 장군봉 아래 287만 6033㎡의 휴양림이 조성되었고, 정치 간부 정치 훈련장이었던 노령 학원 자리는 삼림욕장으로 가꾸어졌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등산로는 좌측으로 돌아 우측으로 한 바퀴 도는 형국이었다. 회문산 휴양림을 통과하는 노령문을 지나면서 요새로 들어서는 것 같은 긴장감이 들었다. 등산이 시작되는 초입부터 힘이 들었다. 겨우 꼬리에 따라붙어서 걸었다. 선봉장인 남편은 저 앞에 길을 헤치고 물 만난 고기처럼 거침없이 올라갔고, 둘째는 형을 따라 잘도 간다. 나는 헉헉거리며 따라갔다.



가을이라 산길엔 낙엽이 앉아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조용한 가족들이라 산을 오르는데만 전념하고 있었다. 떠들 여력이 나한테 없었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는데도, 우리 말고 다른 등산객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은 아닌 듯 등산로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듯했다.



정상을 100여 m 남겨 두고 1906년 최익현 선생과 함께 회문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임병찬 의병장의 묘가 있었다.



837m 정상이 우뚝 솟아 사방이 펼쳐 보이는 경관이 최고였다. 준비해 간 김밥과 과일로 점심을 먹었다. 회문산 정상은 주위의 산들보다 훨씬 높아서 마치, 아빠처럼 커다란 사람이라서 우러러봐야 하는 산 같았다. 멀고 가까운 산들을 내려다보며 보살펴 주는 듯한 형상이었다. 그 넓은 품속은 닭의 날개처럼 숨어들기 좋아서 선한 뜻을 품은 사람들을 안아 주었던 산이다. 주변의 산뿐 아니라, 지리산, 추월산, 무등산, 모악산 등이 멀리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장관이 펼쳐졌다.



회문산을 걸으면서는 다리 아프다, 허리 아프다는 엄살 같은 마음들이 쏙 들어갔다. 이렇게 깊고 험한 산속에 들어 뜻을 펼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을 사람들의 신산한 발걸음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이 꼭 자신만의 삶을 위해 그런 삶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숭고한 뜻이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에서 전북도당이 있었던 회문산을 만났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남편이 꼭 가보고 싶은 산이라고 몇 번 언급을 했었는데, 기회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거부감 없이 따라나선 길이었다. 너무 험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어려운 산의 곳곳이 등산로가 만들어지고 수월하게 오가는 곳이 되었다는 점이 바뀐 사실이다.



올라갈 때, 만나지 못했던 등산객들이 내리막에서 관광차를 타고 온 산악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려가는 길이 더 가팔라서 미끄러지면서 나무 둥치를 잡고 내려가기 일쑤였다. 우리가 이곳으로 올라왔다면 진즉 쓰러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 중간중간 시루바위, 문바위, 소원돌무더기, 천근월굴바위 등 구경거리들이 많았다. 마지막 부분에 있는 기념관은 다소 작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나마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서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산에 갔을 때는 낙엽이 물들어 낙엽이 쌓이기 시작한 가을날이었다. 바람이 서늘해져서 곧 추위가 닥칠 것 같아서 산이 품고 있을 생명들은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다. 한창 바쁜 농사일 좀 한가해지는 늦가을이면, 회문산 정상에 앉아 너울너울 춤추는 산등성이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한나절쯤 앉아 있으면 좋겠다. 



* 오래전 여행이라 직접 사진을 찾기 어려워서 검색 편집하여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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