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는 글 쓰는 사람.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시작해 현재 학습공동체 ‘말과활 아카데미’와 글쓰기 모임 ‘메타포라’에서 정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 마을공동체 청년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도 열었다 – 작가 소개에서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있었던 『쓰기의 말들』을 읽었었다. 은유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서 주문하여 읽게 된 『글쓰기의 최전선』은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는 부제가 있다. 삶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면서 책의 제목을 따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도 역시나 명쾌한 글쓰기의 달인인 은유 작가답게 명문장이 많아서 밑줄을 열심히 그었다. 글의 소제목마다 다른 작가들의 명문장을 적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편의 에세이가 펼쳐진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와 글쓰기의 방향을 알려주는 문장인 것 같아서 반복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목차는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사유 연마하기, 추상에서 구체로,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부록으로 학인들의 글까지 올렸다.
작가가 이끌었던 수업을 소개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목적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 수업이었고, 왜 그 직업을 욕망하는지, 밤이고 낮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잘 산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등등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글로 풀어내며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p31)
내가 읽기로는 『쓰기의 말들』이 글쓰기를 위한 마음을 다지는 책이라면, 『글쓰기의 최전선』은 글쓰기 실전에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소재를 찾고, 글을 쓸 때 주의해야 할 것, 작가의 마음가짐들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내용들이 큰 공부가 되었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에서
“이미 훌륭한 글이 넘치므로 나는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내 삶과 같은 조건에 놓은 사람,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나의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또 기운이 난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말처럼 세상에는 책과 글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선 자리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글은 없기 때문에 “글쓰기는 둥그스름한 돌에서 모난 돌로 자신을 깎고 벼리는 일이다. 더 섬세하고 더 고요하게 감각을 다듬어야 한다.”라는 말에 밑줄을 긋고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에세이 쓰기를 한마디로 말해 주는 문장은 이렇다. “한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구체적인 줄거리를 써야 한다.” (p161)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과 일치하는 문장이다. 글쓰기도 삶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유 작가와 이 책이 더 귀하고 좋은 이유는 그가 활동가라는 점이었다. 사회적으로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글쓰기 활동을 통해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한 사람이라서 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최루탄 가스와 함께했던 청춘이 있었다. 촛불을 들었던 뜨거움이 남아 있는 가슴으로 살고 있으니 나도, 활동가 기질을 품은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 속의 문장들에 더 공감이 갔다. 삶의 전쟁터 같은 최전선의 현장, 그 끝까지 내려간 자리에서 쓰는 글이 진짜라는 걸 배웠다. '삶에 밀착한 경험에서 좋은 글이 나온다'라는 말에 적극 공감했다.
은유 작가의 알차고 단단한 글쓰기 강의를 책을 통해서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쓰기에 관한 다음 책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가 내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