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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Sep 09. 2024

보이지 않는 더 넓은 세계

레이먼드 카버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14) 중 「대성당」을 읽

아내는 맹인인 친구를 맞으러 기차역으로 갔다. 아내는 맹인에게 책 읽어 주는 일을 하다가 친구가 되었다. 헤어지던 날, 얼굴을 만져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자기 얼굴을 만져보던 느낌을 시로 적었다는 것을 남편에게도 말해 준다.     

 

아내는 여러 친구와의 교류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와는 테이프에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해서 주고받으면서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갔다. 아내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시를 썼다. 아내는 군인이었던 전 남편과 이혼하고 주인공과 재혼한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를 녹음해서 보냈다. 맹인은 아내 다음으로 책 읽어주는 일을 한 여자와 결혼했다. 8년 결혼 생활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맹인인 로버트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아내는 계속 웃고 있다. 주인공은 아내의 밝게 웃는 모습에 놀란다. 집에 온 손님과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로버트는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으로 음식을 찾아 먹고, 행동에도 크게 불편함이 없다.  




    

“난 좋아. 자네가 뭘 보든지 상관없어. 나는 항상 뭔가를 배우니까.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니까. 오늘 밤에도 내가 뭘 좀 배운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내겐 귀가 있으니까.”(p303~304)   

  

맹인이라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가 검정 안경을 썼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로버트는 예상과 달리 밝은 차림이고, 대화나 행동에도 눌림 없이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부분에서 나도 놀랐다. 로버트의 그런 자신감은 늘 배우는 자세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와 손님인 로버트는 지나간 십 년의 일을 줄기차게 이야기한다. 로버트는 무선 기사들과 교신한 이야기도 하며 그런 친구가 많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의 폭이 눈이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큰 제약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세 사람은 마리화나를 말아 나눠 피며 점점 가까워진다. 아내는 잠이 들고, TV에 대성당이 나온다.   

   

주인공은 로버트에게 대성당을 알게 하려고 말로 열심히 설명해 보지만, 로버트는 이해하지 못한다. 로버트는 종이와 펜을 가져오도록 한다. 주인공의 손 위에 로버트가 손을 얹는다. 주인공은 대성당의 형태를 그려나간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p309)

    

나도 내가 농부가 되어 생소한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고, 알레르기까지 있었던 복숭아나무를 직접 기르는 사람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삶이 희한한’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인공은 로버트와 함께 손에 펜을 쥐고 대성당을 그려 나가면서 생각한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p311)     

시공간을 초월한 감각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로버트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어둠 속에 갇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 주인공도 로버트를 통해 집 안이 아닌 더 넓고 큰 세계로 사유가 넓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독자에게도 자유를 주는 듯한 최고의 결말이었다.    





주인공은 아내가 자신보다 더 가깝게 생각하는 이성 친구가 있다는 것을 뜨악해한다. 십 년 넘게 두 사람이 말을 녹음해 테이프를 주고받으며 깊어지는 관계를 무심한 듯 지켜본다. 집에 찾아왔을 때, 로버트나 아내는 스스럼없이 반가워하고 대화를 이어 나간다. 맹인인 로버트를 배려하는 아내의 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편안해 보이는 로버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주인공은 어색해하면서도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아내가 잠이 든 사이. TV에서 나오는 대성당을 설명해 주는 주인공. 말이 아니라,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대성당을 그려나가는 숭고한 행위를 통해 서먹했던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색한 마음을 허물어뜨리고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 없이 어떻게 하면 대성당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까 하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려 나가는 장면이 영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은 세계가 훨씬 더 넓고 크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넓고 유연한 생각을 가진 로버트가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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