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대추가 떨어지면 가을이다.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대추야 떨어져라' 그런 말이 있다고 엄마가 알려 주었다. 엄마는 왕대추가 생과로 먹을 때 맛이 좋다고 심으라고 재촉했다. 고향집에 있는 왕대추는 아삭한 맛이 나는 사과대추였다. 왕대추를 사과대추라고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우리가 심은 대추는 왕대추를 달라고 해서 묘목을 심었었는데 맛이 덜했다. 날이 가물어서 물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올해로 3년 째던가 싶은데, 작은 나무에서 열매가 어찌나 많이 열렸던지 가지가 부러지고 야단이 났다. 열매가 많이 열린 가지들을 고추지줏대로 세워서 묶어 주려던 것이 또 한 발 늦어서 아예 찢어져 버린 가지들도 생겼다. 늦게나마 서둘러 지주를 세워 주었다.
붉은 빛깔이 돌면 대추를 따도 된다고 한다.붉어지면서 커지는 대추를 한 개씩 따 먹어본다. 달콤함이 입안을 채운다. 가을이 참 달달하다.
은행열매가 노랗게 변해가면 가을이다. 강물과 농원을 가로지르는 은행나무에 올해도 주렁주렁 열매가 열렸다. 너무 많이 달려서 굵진 않지만, 하늘에 청포도가 매달린 것처럼 송이송이 달렸다. 노랗게 변한 열매에 비해 은행잎은 아직 파래서 가을이 덜 익었다는 것도 알겠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바람에 살랑거리는 은행나무 이파리들 사이로 가을빛도 친구 되어 어우러지는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참 가을스럽다. 서서히 노랗게 물들어 가면, 가을도 더 깊어진다.
벌써, 다 익은 은행알이 바닥에 떨어져도 주울 여력이 없다. 사실은, 작년에 주워서 껍질을 까 놓았던 은행알들을 잘 먹지도 못했다. 언니랑 동생이랑 친구들한테 열심히 나눠 주고도 남은 것을 정작 우리는 해 먹을 시간이 없었다. 올해도 열매를 주워야 할까 말까를 놓고 땅바닥에 떨어진 은행알을 보면서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은행알을 주워서 미생물 효소를 만들어 밭에 뿌리면 좋다는 정보는 들었지만, 그도 아직 시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알밤이, 밤송이가 떨어지면 가을이다. 농원 진입로를 지나서 우리 땅 안에 밤나무가 두 그루 있다. 제법 알이 굵어서 농원을 드나들 때마다 줍게 된다. 차로 그 예쁜 밤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기에. 밤나무는 20년도 더 된 아름드리 고목이다.
밤송이 위에 차꽃이 내려앉았다. 처음에는 흰나비가 앉은 줄 알았다.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차꽃이었다. 울타리로 차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차꽃이 떨어지면 가을이다. 이 말도 맞는 것 같다.
어떤 이는 뾰족한 밤가시가 먼저 보일 수 있겠다. 어떤 이는 예쁜 꽃이 먼저 보일 수 있겠다. 사는 것도 그런 거 것 같다. 가시밭에서도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을, 뾰족한 가시들 속에서도 탱자가 노랗게 익듯이 아프고 힘든 일들을 이겨내고 꽃피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겠다.
콩꼬투리가 차오르고 누렇게 변해가면 가을이다. 초여름에 심었던 조그만 콩알들에서 순이 나와서 허리만큼 차 올랐다. 심는 시기를 놓쳐 늦게 심어서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이 씩씩하게 자라주었다. 초록물결을 살랑이며 콩밭을 꽉꽉 채웠다.
꼬투리가 놀랄 만큼 많이 달렸다. 엄마는 서리내기 전에 콩을 수확해야 될 텐데 어쩌면 좋으냐고 걱정을 한다. 손으로 만져보면 단단하게 차오르고 있는 콩알이 만져진다. 작년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콩을 길러서 바닥에 콩알이 떨어져도 걱정이 덜했는데, 올해는 바깥에 심어 놓았기 때문에 풀관리를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언제 콩대를 뽑아야 할지, 자꾸만 콩밭을 살핀다. 콩깍지가 타진 것도 있기는 한데, 꼬투리를 만져보면 알이 너무 부실해서 좀 기다려 줘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콩을 늦게 심었기 때문에 열매가 아직 작다. 꼬투리가 더 검어지고, 이파리가 많이 떨어져서 콩을 뽑을 때가 되면, 진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