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마치고 수형 잡기가 한창이다. 수확을 마치고, 병충해 방제와 풀관리로 시간을 많이 썼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해충도 많았고, 풀도 잘 자랐던 여름이었다. 원래는 가지치기를 하면서 수형 잡기도 함께 했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남편이 틈틈이 가지치기를 마쳤다. 그래도 잘라줘야 할 가지들이 보인다. 지금은 잎이 광합성을 해서 나무를 키워야 하는 시기라서 가지를 너무 많이 자르면 안 된다. 수형 잡기는 나무를 잡아주고, 묶어야 해서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
"나무가 요가를 하는 것 같네요."
솜씨 없는 초보 농군인 우리가 4년째 가지치기와 수형 잡기를 하면서 어찌나 이리저리 비틀어 놓았던지 나무의 모양이 가관이다. 찢기고 파이고 비틀어진 모습이 보기에도 짠한 모양새로 자라서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며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무가 욕을 한다고?"
동문서답의 명수인 우리 부부다. 남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나도 얼른 수긍을 한다.
"맞아요! 욕을 먹어도 싸네요. 나무들이 말을 못 해서 눈물을 막 흘리잖아요."
끈끈한 수지를 뿜어내고 있는 나무들을 쓰다듬는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은 철봉을 달구었고, 유인해 놓은 나뭇가지가 열을 받아서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에 유인하면서 상처 입은 가지들을 잘라냈고, 철봉 가까이에 있는 가지를 떼어주거나 스티로폼을 받쳐주고 있다.
나무는 위로 자라는 본성이 있다. 유인선에 가지를 묶으려고 억지로 당기는 것은 금지다. 나무들을 부드럽게 만져서 철봉에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고 선을 묶었다. 아무리 좋아도 너무 가까이 당기면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사람과의 사이에도 생길 수 있는 관계의 문제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묶었던 끈들을 풀어 주고, 유인할 방향만 살짝 묶어 준다. 철봉에 나뭇가지가 닿지 않도록 주지를 반대편으로 당겨서 반듯하게 세운다. 묶음줄도 아까운 줄 모르고 철봉을 몇 바퀴씩 돌려서 묶어 놓았었다. 나무를 묶은 것이 아니라, 철봉을 묶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묶음줄들도 풀어서 재활용해야 한다.
나무도 사람과 똑같아서 상처가 생기고, 부러진 가지를 넓적한 띠로 묶어 주면 상처에 밴드를 붙인 것처럼 잘 아문다. 유인선으로 방향을 잡아서 묶어 주면 또 그 방향으로 잘 자란다. 그러고 보면, 복숭아나무는 참 순한 성질의 나무다.
나는 자랄 때, 순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이 늘 불만이었고, 그런 마음이라서 엄마 곁에서 엄마를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자잘한 심부름들을 했지만 마음까지 편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가 날 부르는 것 같았고, 학교 마치고 일찍 집에 가면 들일을 도와야 해서 어두컴컴할 때까지 책을 읽고 늦게 집에 왔다. 엄마가 해찰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엄하게 야단치셨지만, 학교에서 책 읽고 왔다고 하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늘 이러면 안 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등의 엄한 말씀들과 함께 떠오르는 엄마다. 엇비슷한 나이로 자라는 오 남매와 바깥일이 우선인 아빠의 뒷바라지, 종갓집 대소사에 대가족을 건사하시느라 바쁘신 엄마가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내셨을까를 생각해 본다. 요가를 하는 나무처럼 엄마도 마음이 갈래갈래 찢기고 파이고 갈라지고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를 묶어서 파인 부분을 풀어주었다. 눈물처럼 진물이 흐른 상처를 매만진다. 엄마의 마음을 만지듯 쓰다듬는다. 나무를 키우면서 엄마의 삶을, 아이들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나무는 엄마가 되기도 하고, 내 아이들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 내가 되기도 한다.
품종 개량을 하겠다고 다 자란 나무들을 뽑아냈다. 늦봄에 심었던 새로운 품종의 묘목들이 다섯 달만에 처음보다 4배 이상 자랐다. 내년이면 꽃이 핀다고 하니 놀랍다. 이번 나무들은 정말 실수 없이 잘 키워야겠다. 비결은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무의 상태를 늘 점검해서 나무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이었다. 앞의 실수들을 경험 삼아 나무들이 아프지 않게, 내 마음이 아프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