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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화분

김정환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20).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빈 화분


김정환

빈 화분이 이미 빈 화분 아니고 비로소 집이다.

식물의, 식물적인 기억의.

바라봄 없는 바라봄의 원형이 있다.

무엇이 원(圓)이고 어디가 원(原)?

질문도 그렇게 시끄러운 운명이 없고

운명도 그렇게 시끄러운 무늬가 없다.

도란도란이 두런두런으로 넘어가는 원형이다.

신대륙의. 공간이 죽음을

품기 위하여 펼쳐지려는 노력이었군.

시간이 저 혼자 간절하게 이어졌어.

그런 수긍도 이제 둘 다 먼저 그러지 않고

너무 많은 시간과 공간의

낭비도 고요한

신대륙이다, 빈 화분.




* 마음을 붙잡은 문장

공간이 죽음을 품기 위하여 펼쳐지려는 노력이었군

(한때 100여 개가 넘는 화분을 집안에서 기른 적이 있었다. 남자만 셋에 둘러싸여 사느라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과 아이들에게 꽃과 식물을 자주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 모든 것을 길러내는 일도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 농원을 시작하면서부터 집안에서는 '죽음을 품은' 빈 화분이 늘어갔다. 더 이상 집안에서까지 식물을 기르는 일이 벅차고 힘겨워졌다. 죽음의 '시간이 저 혼자 간절하게 이어'지는 동안, 나의 시간도 더디게 흘렀다. 그렇게 사라진 꽃들에게 뒤늦은 안부를... 나의 빈 화분들에도 신대륙 같은 사연이 담겼다. 어떤 꽃이 살았던 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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