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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과

김중일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21).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오늘도 사과


김중일

날 한번도 만난 적 없이 떠나간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잘해주지 못해서.

깊은 꿈을 꿨어요. 너무 깊어서, 눈을 떴는데 여전히 바닷

속이었어요. 깜짝 놀라 다시 눈을 감았어요. 나도 모르게 뛰

쳐나가려는 놀란 가슴을 손으로 눌렀어요. 내 몸은 이미 물

이 됐는지, 가슴에 손이 빠져들었어요. 찬 심장을 거머쥐었

어요. 손안에서 심장은 물처럼 흩어졌어요. 그때 내 손을 잡

아주어서 고맙습니다.

깊은 꿈에서 깼어요. 야산에 묻힌 지 사년 지난 네 살 아이

시신은 결국 못 찾았어요. 얼마 전 실종된 일곱살 아이는

끝내 시신으로 찾았어요. 온 산을 거머쥐고 있는 땅속 아이

의 작은 손을 생각했어요.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합

니다.

내 머리를 모자처럼, 몸을 셔츠처럼, 다리를 바지처럼, 발

을 구두처럼 공중에 벗어놓겠어요.

내 손을 손수건처럼 공중에 건네겠어요.

단 한번도 못 만나고 떠나보낸 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단 한번도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창문 속으로 빈방이 뛰어내리듯,

눈빛 속으로 사람이 뛰어내리듯,

오늘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마음을 붙잡은 문장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예기치 못한 삶의 고비를 만나서 이유도 모른채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 너무도 크게 공감이 간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쓰러져간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다음 세상을 살아 갈 다음 세대를 생각했겠지. 기껏해야 내가 잘 살아야 내 자식이 잘 살겠지라는 정도의 생각으로 사는 나같은 소인배는 엄두도 내지 못할 행적을 가진 분들. 그 숭고한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오늘도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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