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27).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심야 식당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
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 마음을 붙잡은 문장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오래 만난 사이라는 것이 짐작된다. 함께 국수를 자주 먹었고, 같은 식당에 같이 갔던 사이라는 걸 유추해 낸다. 그런 친구가 있다. 여고 때 만나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절친인 그.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혼도 안 하고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 우린 참 많은 일들을 함께 했었다. 영화관도 식당도 읽는 책까지도 늘 공유했었다. 팥죽을 먹을 때, 상추 튀김을 먹을 때 그가 생각나곤 했다. 그는 ‘요즘 무얼 먹고 지내는지’ 문득 생각날 때가 있었다. 그와 함께했던 것들을 나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는 ‘혼자 먹는 일’이 쓸쓸하진 않은지 그런 게 궁금해진다. 그럴 때, 우리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