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편 (28).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서쪽
이경림
딸은 서쪽에 있다고 말했다
거기가 어디냐고
무엇의 서쪽이냐고
묻는 걸 잊어버렸다
바로 코앞인 것 같으나 만져지지 않았다
아주 먼 곳 같으나 코앞이었다
모르는 행성 같기도 했다
나뭇잎들 서쪽으로 서쪽으로 흔들렸다
그림자들 하나같이 서쪽으로 누웠다
집, 길, 햇빛, 사람, 나무, 하늘
모두 서쪽이었다
여긴?
돌아보는데 그녀 있던 자리 벌판이었다
누런 이파리들이 춤추듯 날아갔다
깡충깡충 한뼘씩 가는 것도 있었다
쓰레기통 옆인데 자동차 밑인데 보도블록 아랜데
모두 서쪽이었다
한 아이가 서쪽을 꺾어 들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버들개지 같은 서쪽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집, 길, 햇빛, 나무, 하늘 모두 서쪽이었다
(동쪽은 해가 뜨는 쪽이라 생명, 탄생, 삶, 현실의 공간을 의미하고 떠오르기 때문에 상승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반면, 서쪽은 해가 지는 쪽이라 죽음, 소멸, 저승, 내세의 공간을 의미한다. 해가 지기 때문에 하강(소멸)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서쪽=죽음(내세)=서역=불교=부처=불국토=극락(이상세계) 네이버 블로그 ‘철투쌤의 국어 시간에서 인용’ 이렇게 풀어 놓으니, 세상 모든 것이 이상세계라는 이야기가 된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살짝, 딸이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어두운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행에 '버들개지 같은 서쪽'이라는 표현에서 밝은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버들개지도 부푼 희망 같은 것을 품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삶 자체가 행복한 것으로 생각해 보자. 살아 있는 오늘이 행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