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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페이지

이종민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59.)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찢어진 페이지


이종민


장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맡은 냄새를 기억하고 있습

니다.

‘아름다운 노을’과 ‘노을이 아름답다’의 차이를 생각하던

날입니다. 어디선가 묻혀 온 붉은 실이 외투에서 떨어진 날

입니다.


허구의 이야기는 존재했거나 일어날 일이라고 믿는 편입

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야기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마

찬가지로요.

구르는 낙엽을 밟으면 부서지는 소리가 납니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주워서 이 책에 끼워놓았습니다.

오늘 죽은 사람은 내가 죽어야 사라지겠죠. 부서지는 소

리가 나면 정말로 부서질까봐 땅을 보며 걷는 습관이 남았

습니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오늘 죽은 사람은 내가 죽어야 사라지겠죠.


(내 마음에서 사라져야 죽은 사람이 되겠죠. 별이 되기도 하고, 달이 되기도 하고, 마음속에 숨었다가 언뜻언뜻 생각나면 살아있는 것이겠죠.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거나, 있었던 이야기들이겠죠. 설날에 장례식을 다녀왔었는데, 이분은 설날마다 살아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필이면 설날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설날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을 기둥을 붙잡은 것 같지, 뭡니까. 사람이 그렇네요. 낙엽 부서지는 소리만으로도 부서질까 봐 땅을 보며 걷게 됩니다. 낙엽이 다칠까 봐, 낙엽이 아플까 봐(첫 동시집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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