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연
오늘의 시 한 편 (58.)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사랑의 모양
정다연
빛이 지나치다.
지나치게 네가 온다.
나는 구멍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언제든 널 숨겼다가 꺼낼 수 있는,
창에 기댄다. 체리처럼 번져오는 노을, 노을을 따라 전속
력으로 달려오는 사람, 색색의 플라스틱 빨대들. 그런 건 내
가 훔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물을 튼다.
하루가 정직하게 차오른다.
보고 있어
한번은 말하게 된다.
수도꼭지를 돌리듯 네가 따뜻해진다면 좋겠다.
회오리치는 빗물 배수관의 소용돌이, 합쳐지는 꽃잎과 이
끼들, 구덩이를 가득 채우고 솟아오르는 빛의 입자들이
너는 아니지만
흠뻑 젖게 된다.
기댄다.
네가 아닐 리 없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숨 막힐 듯 가득 찰 리가.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노을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사람
(노을의 아름다움을 볼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처럼 읽힌다. 노을과 함께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그리움이 밀려오는 사람이라는 말. 어두워져 가는 시간을 물들이는 노을은 아름답다.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일까? 어둠에 색깔을 입히기 때문일까? 벅찬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모양과 형태가 다양하겠지만, “수도꼭지를 돌리듯 네가 따뜻해진다면 좋겠다.”라는 구절도 마음을 붙잡힌 문장이지만, 사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걸 알기에….)
* 사진은 페북에서 퍼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