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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서서

이근화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56).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이근화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 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세상이 중심에 서서


(세상의 중심은 어디냐는 질문을 받고 입을 다물어버린 적이 있다. 세상이 누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이었겠지만, 나는 형제들을 뒷바라지하는 사람이었고, 엄마를 도와야 하는 사람이어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말을 하지 않고 싶어서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닌 것만 같다. 이 글을 쓰신 시인님은 도서관 사서가 아닐지 생각했다.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을 세우고 아예,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가 되고, 마침내 스스로 도서관이 되어버린 사람이라는 상상을 했다. 세상의 중심이 도서관이라는 것, 지식이 있어야 세상의 이치를 알기 쉽다는 것을 토대로 생각한다면 세상의 중심은 도서관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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