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오늘의 시 한 편 (55).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이제 나뭇잎 숭배자가 되어볼까?
김선우
도끼도 톱도 필요 없다. 나무를 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봄여름에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는 것. 나뭇잎들의 노동이
멈추면 나무는 죽는다. 대대손손 뿌리만 파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뿌리 숭배자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한 계절만
겪어보면 알게 된다. 햇빛과 바람 속에 온몸으로 나부끼는
나뭇잎들의 역동, 한잎 한잎 저마다 분투해 만들어낸 양분
을 기꺼이 모아준 나뭇잎들이 나무를 살린다는 것. 나뭇잎
들의 코뮌이 즐거운 노동으로 생기 넘칠 때 나무가 건강해
진다는 것. 안녕, 안녕, 인사하는 나뭇잎들의 독자적인 팔랑
거림, 한 방향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때조차 저마다
다른 자세와 기술, 햇빛과 물만으로 양분을 만들어내는 천
지창조의 노동자들,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이 만든 것을 아낌
없이 나누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여유와 자
유. 뿌리 깊은 나무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태어나는 나뭇잎
은 없다. 가계(家系)의 문장(紋章)에 집착 없는 나뭇잎들이
야말로 한그루의 세계를 유지하는 진짜 힘이라는 것.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나무를 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봄여름에 나뭇잎을 모두 따버리는 것.
(이 문장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블루베리 나뭇잎을 모두 따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따내는 나뭇잎은 지난해의 나뭇잎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심했다. 나뭇잎을 따주면서 알았다. 벌레들이 집을 지어 나뭇잎 뒷면에 알을 까놓고 있어서 그런 잎들을 제거해 주는 것이 나무의 건강을 위해서 중요하다는 것을. 새잎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나무에 설명해 주고 싶다. 나무가 잘 살 수 있는 것은 새잎을 만들고 일 년 동안 나무를 키우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마른 나뭇잎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나뭇잎을 직접 손으로 따내는 사람으로서 기꺼이 “나뭇잎 숭배자”자 되고자 한다. “아낌없이 나누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가지를 떠나는” 나뭇잎이 어머니를 닮았다. 바삭이는 나뭇잎을 만질 때마다 어머니의 신음을 듣는 것 같아서 잠깐씩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