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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전욱진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74).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리얼리티

전욱진


시간을 여행한다

영화에서 그랬다

앉아 있는 나는 저렇게

먼저 다녀온 다음에

말해줄 수 없겠지

미래의 불행을 막으려고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지키려고

눈에 보이는 선한 의지까지도

여기 앉은 나한테는 없는 것

이미 일어난 일의 주변을 서성이며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정말 그래

회상을 통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영화 속 사람들은 끝내

불가능한 일들을 해내고

가장 긴요한 역할을 수행해낸

한 사람의 내레이션이 들리고

그렇게 이 모든 일은 과거가 되어간다

화면 밖으로 영화가 길게 이어진다면

그들은 이를 추억이라 부를지 모른다

이게 벌써 십년 전이구나

같은 영화를 열번쯤 보는 나는

플래시백이라는 기교를 부려본다

과거를 다시 돌보아

현재를 돕고 싶지만

감정의 고조는 이제 없어

눈 감고 누우면 그래도 잠이 왔다

지키지 못한 것을 지켜내는 것은

꿈에서나 그랬고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눈에 보이는 선한 의지까지도 여기 앉은 나한테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아예, 그런 희망 자체를 갖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영화나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엄연한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타임머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불가능했던 일일생활권이 가능한 지역으로의 왕복, 외국 여행을 다녀올 때, 시간이나 하루를 또 살게 되는 경우에 그런 생각이 든다. 과거로의 미래로 갔다가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영화가 만들어졌을 것인데,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꿀 수 있다면, 어디쯤으로 돌아가고 싶을지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다는 명언이 떠올려지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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