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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부는 바람

유혜빈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7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낮게 부는 바람

유혜빈


그건 정말이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

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일이야

늦은 여름 아침에 누워

새벽을 홀딱 적신 뒤에야

스르르 잠들고자 할 때

너의 소원대로 스르르

잠들 수 있게 되는 날에는

저 먼 곳에서

너는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멀리서 너의 이마를 아주 오래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무래도 너는 모르는 게 좋겠지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그 한 사람이 너를 잠들게 하는 것이라는 걸



(여름 한낮에 농원 은행나무 아래서 잠깐, 쉴 때가 있다. 힘든 노동 끝에 배부르게 점심까지 먹었으니 당연히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 힘든 순간이다. “낮게 부는 바람” 그 고마움 바람이 누군가가 나를 잠들게 하도록 보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게도 수호천사가 있어서 나의 고됨을 쉬어갈 수 있도록 스르르 잠들게 할 수 있도록 바람을 보내주는 손길이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비밀리에 행하는 일이라면, 바람도 마니또가 된다. 나도 누군가의 마니또가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착한 생각도 해본다. 아뭏튼, 이 시 정말 좋다.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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