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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송경동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71).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송경동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개 천만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친절한 안내를 멈춰주세요

나의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광장이 스스로 광장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전체를 위해 노동자들 목소리는 죽이라고

소수자들 목소리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부분들이 행복해야 전체가 행복해요


어떤 민주주의의 경로도 먼저 결정해두지 말고

어떤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한계도 먼저 설정해두지 말고

오늘 열린 광장이 최선의 꿈을 꿔볼 수 있게


광장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광장보다 작은 꿈으로 광장을 대리하려 하지 말고

대표자가 없다는 말로 오늘 열린 광장이

어제의 법과 의회 앞에 무릎 꿇지 않게 해주세요


위만 나쁘다고

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바꿔야 할 게 많아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광장이 스스로 광장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광장에 몰리는 상황은 바람직한 상황이 아닌 일이 생겼다는 말로 대변될 수 있겠다. ‘나도 바꿔야 할 게 많아요’라고 고백하는 시인의 말이 더 가슴에 박히지만, 광장으로 직접 달려가지는 못해도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위안 삼는다. 먼 곳까지 달려갈 수 없으면, 가까운 곳에라도 모여 보자는 마음으로 함께 했던 겨울도 춥지 않았던 것은 한마음으로 외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라서였겠지. 광장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3월이다. 따듯한 결말, 마땅한 결말을 간절히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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