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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는 생각의 곰팡이

유수연

by 민휴

오늘의 시 한 편 (76).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미래라는 생각의 곰팡이


유수연


공동묘지엔

비공동체적 침묵이 존재한다


윗부분만 깎은 사과를

서로 나눠 먹는 동안

너무 익은 분말 같은 속살을 씹는다


여기에

온몸을 납작 엎드리는 인사는 누가 시작했을까

슬픔은 일종의 세리머니

승기를 올리듯

썩은 것엔 곰팡이가 피듯

시체는 깨진 체온계


붙잡고 종일 울 것 같지만 만지기도 꺼려지는 것

이미 부풀어 오르고 싹이 난 감자가 되고

살았던 것보다 길게

그런 긴 환상을 잊을 만큼 따분한 상태였다


시체에게

영혼은 철 지난 상상일 뿐이고

여름은 무성한 잡초를 키울 뿐이니까


도려내고 싶다 사과에 난 곪은 상처처럼

깨물어 뱉어버리고 싶다 상자 밑 사과처럼

그만 멍들지 않게

남은 사람은 슬픔의 테두리를 도려내 버려야지

붉음

개가 꾸지 못한 색깔의 낮잠처럼

살짝만 좌절하고


자는 개를 깨우면

개의 표정도 경멸을 담을 수 있음을

그걸 보고 웃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괜찮다는 마지막을 남기고

계속해 시체가 되는 버그가 있다


이해한다


성장하는 건 역시 끔찍한 것이군

멋쩍은 듯 던져진 것이

종일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남은 사람은 슬픔의 테두리를 도려내 버려야지



(설날 다음날, 고모가 돌아가셔서 문상하러 갔다. 아빠께는 동생이 되는데 아빠 뒷줄에 우리들이 섰다. 국화꽃을 올리고 자리로 돌아와 두 손을 모았다. “에고 에고 에고” 곡성에 깜짝 놀랐다. 문상을 가면, 절을 하거나, 묵념하는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현재까지 향교의 전교로 활동하고 계시기에 그것이 문상의 예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곡성에서 진짜 울음이 묻어나서 나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아빠는 공손히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돌아가신 분은 위아래 상관없이 절을 받을 수 있다. 식사 자리로 돌아오셔서도 계속 눈물을 찍어 내셨다. 오빠한테 절을 받는 몹쓸 사람이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슬픔도 썩은 사과를 도려내듯 도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도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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