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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세상 속으로

최영재 동시집 『피아노의 어금니』(아침마중, 2023)를 읽고

by 민휴


최영재 선생님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시집 『마지막 가족사진』, 『개의 고민』, 『우리 엄마』, 『고맙지, 고맙지』, 『해의 머리카락』 등, 명랑소설 『별난 초등학교』, 『별난 가족』, 『축구 초등학교』 등, 동화집 『지금이 좋아요』, 『사과 선생님』, 『하늘에서 달리기』 등 다수의 작품집이 있다. 서울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장 퇴임. 한국동화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을 받음. - 작가소개에서 편집



내가 음악회에 가서 놀라운 기적을 만났듯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어린 독자가 “히잇, 재밌네.” 한다면 나는 좋아서 껑충 뛰며 종일 싱글벙글할걸요? 아마? - 작가의 말에서



벌써,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나요? 최영재 선생님이 이끄는 재미있는 세상으로 들어가 볼까요?




길가로 늘어진 가로수 가지 팻말에

- 나무 조심

‘머리 조심’이 아닐까?


어제 새로 만든 비탈길 계단 위에

- 계단 조심

‘발 조심’이 아닐까?


새 건물 두꺼운 유리 출입문에

- 유리 조심

‘손 조심’이 아닐까?

― 「이게 아닐까?」 전문 (p22)



어린이다운 생각이고, 모두 맞는 말 같다. 어른들이 바르지 않게 적어 놓은 글을 어린이는 바르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정해준 대로 생각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어린이다움이 좋다. 매사에 한 번 더 생각하라는 작가의 조언이 들이는 것 같다.




구급차가 왜애앵!


복잡한 도로 위 차들이

얼른 옆으로 몸을 피해

길을 내준다.


구급차의 다급한 목소리 듣자마자

아스팔트는 뻥 뚫린 새 차선 하나를

금방 만들어 낸다.

― 「새 차선」 전문 (p29)



차들이 막혀 있던 도로에서 구급차 소리에 재빨리 한쪽으로 비켜서 차선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그 순간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아파서 구급차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고 도로 위의 운전자들이 하나 같이 일사불란하게 새 차선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가도 그 기적을 만든 장본인이기에 이런 따뜻한 작품이 나왔을 거로 짐작된다. 어려움에 부닥친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보태는 행위는 작은 행동일 수도 있지만 큰 감동의 기적을 만든다.



피아노의 어금니2.jpg





잔잔한 호수 옆에 앉으면

괜히 눈이 너그러워지지.


숲 속 길옆에 앉으면

괜히 귀가 아늑해지지.


네가 내 옆에 오면

나는 괜히

정답고 따뜻한 말만 하게 되지.

― 「좋아서」 전문 (p75)



다른 사람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도 착해지나 보다. “정답고 따뜻한 말만 하게” 만드는 사람은 분명 좋은 사람이 터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잔잔한 호수와 숲 속의 길을 끌어왔다.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다. 작가의 너그럽고 여유 있고 따뜻한 성품이 보이는 것 같다.




예쁜 꽃 옆에 얼굴 붙이고

사진 찍는다.

꽃처럼 예뻐지고 싶었던 게지.


한 아름 소나무 끌어안고

사진 찍는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되고 싶었던 게지.


졸졸졸 개울물에 발 담그고

사진 찍는다.

맑고 시원한 사람 되고 싶었던 게지.

― 「사진을 찍는다」 전문 (p81)



좋은 풍경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다. 여행지에 가면 사진 찍을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곳이 많다. 그런 장소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그저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좋은 풍경을 닮고 싶어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을 이 동시를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을 향한 관심과 사랑에서 나오는 것일 터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싶다. 이 작품 외에도 사진에 관한 시들이 몇 편 더 있다.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며 아름답게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피아노의 어금니3.jpg




힘들거든

잠시 앉아

쉬었다 가라고

내준


긴 의자.

― 「넓은 계단」 전문 (p92)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앉을 곳을 찾게 된다. 앉을만한 의자가 가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어도 괜찮다. 계단에 앉아도 된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불편한 것이 많다. 편하게 생각하면 내 삶이 더 풍요롭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과 삶의 방식이 글에서도 느껴진다.




2020년에 발간한 최영재 선생님의 동시집 『우리 엄마』를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6·25 전쟁 중 강제 납북으로 남편을 잃고 오직 어린 삼 남매를 위해 평생토록 희생하신 어머니께” 바치는 동시집이다. 어머니의 삶에 감사하기 위해 어머니의 일생을 동시집으로 펴낸 효성 지극한 최영재 선생님이시다. 『우리 엄마』는 “연세대학교 김동길 교수 추천 도서”라고 앞표지에 적혀 있다. 전후 어머니의 눈물겨운 삶이 시로 승화되어 있는 작품이다.




『피아노의 어금니』는

재기 발랄한 생각으로 재미를 불러오는 동시집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하는 어린이가 책 속에서 산으로, 강으로 끌고 다니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세상 곳곳의 재미난 곳을 알려 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고 품을 수 있는 따뜻함으로 소통하게 된다. “내 생각이 맞지?”라고 어깨를 으쓱이는 어린이의 환한 미소가 보이는 것 같다.




사물과 현상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규정짓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할 때, 세상을 정해진 틀로만 바라보지 말고, 보다 더 즐겁고 재미난 관점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하는 것 같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너머 다른 것을 보라”라고 강조했던 창의적 귀재 스티브 잡스처럼 남과 다른 생각과 행동은 천편일률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더욱 창의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피아노의 어금니』가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서 세상 곳곳에서 재미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피아노의 어금니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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