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문학과지성사, 2021)중 「폐쇄되는 도시」를 읽고
정소현 작가는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 『품위 있는 삶』, 중편소설 『가해자들』이 있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책을 읽고 작가와 책 내용을 배우는 과목이 있었다. 그 수업 시간에 알게 된 현대문학 작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가 정소현 작가였다. 그가 구축한 세계가 새로운 발상이라서 너무 충격적이었고, 정신의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다.
『너를 닮은 사람』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양장 제본서 전기」는 사람이 죽을 때, 원하면 책으로 변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지나간 미래」는 치매를 앓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이야기였다. 이번 단편도 그 작가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현실로 구현될 가능성이 있는 소설적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 설정은 이렇다.
“C시는 인신매매와 매춘, 강력 범죄 등의 문제로 늘 시끄러웠는데, 국가에서는 그곳을 친환경 관광 도시로 전면 재개발하기로 결정했다.”(p90)
C시의 상징 같은 흉물스러운 서민 아파트. 주인공 삼은 여섯 살에 유괴되어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 4년을 보내다 돌아오지만, 부모는 헤어진 상태로 삼에게 있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줄 처지가 아니다. 삼은 부모의 이혼이 자기 탓이라 생각한다.
부모는 그녀의 평화를 위해 모두 용서하고 잊자고 했고, 그녀도 부모의 말대로 그 시절을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삼은 유괴당하지 않고 자란 아이들보다 2년 늦게 초등학교에 갔다. 부모에게 방치된 채로 자랐지만, 그런 형편을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4년의 공백을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로 메꾸었다.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보다 책을 더 가까이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냈다.”(p92)
비워지고 있는 아파트에서 자신이 살았던 곳을 찾아간다. 어떤 할머니한테 유괴당할 당시, 지하방에는 여러 명의 아이가 있었고, 할머니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놀이터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잘 먹고 잘 놀았다. 가끔 아이들이 사라졌다. 또 새 아이들이 들어왔다. 할머니는 부모가 찾아갔다고 했다. 삼은 할머니가 사는 집에서 4년을 살게 된다.
주인공이 찾아간 서민 아파트에는 삼과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온통 모르는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할머니들은 대부분 몸이 불편해 보인다. 납치 당시 함께 지냈던 할머니의 손자 복을 기다린다. 복은 다음 날 아침에야 들어온다. 삼과 복은 버려진 아이를 줍는 일을 했다. 복이는 엄마가 버린 아이였다. 그녀는 복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유일하게 자신의 과오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폐쇄되는 도시를 떠나 이사하면서 할머니들을 버리고 간다. 용역업체에서 자식들한테 돈을 받고 부모들을 데리고 간다. 삼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솥과 냄비를 찾아내 마당에 불을 피워 식사를 만든다.
댐을 건설하기 위해 마을과 땅이 물에 잠긴다는 소식을 가끔 들었고, 실제로 수몰지구도 여러 곳에 있지만, 도시 전체가 폐쇄되는 이야기는 생소했다. 재개발로 인한 마을 단위의 소멸을 접한 적이 있지만 말이다. 인간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사라진다는 전제가 있다면 여러 가지 것들이 뒤틀리고 엉키게 될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정소현 작가의 기묘한 사건의 설정과 끌려 들어가는 문체와 빛나는 문장들에 마음이 갔다.
주인공을 ‘그녀’라고 칭하기도 하고, ‘삼’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왠지 나는 ‘삼’이라는 이름이 ‘삶’으로 읽혔다. “그녀의 삶” 그렇게 읽으면 알 듯 모를 듯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해되는 측면이 생긴다.
유괴당해서 할머니의 지시하에 ‘엄마가 버린 아이들을 줍는 일’이 나쁜 일인지도 모르고 행했을 주인공은 4년 만에 돌아왔지만, 그런 행위가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부모들이 들어주지도 않았고, 따뜻하게 품어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괴당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4년을 살았던 유괴 장소를 찾아가게 되고, 같은 처지였고, 자신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복을 만나게 된다. 아이를 줍던 복은 이제 성인이 되어 버려진 ‘할머니들을 줍는’ 일을 한다. 복은 어쩌면 버려지는 할머니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할머니들을 기거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사서 할머니들이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복의 마음을 알려 준다.
삼이 할머니들에게 무언가라도 만들어 드리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신이 과거에 행했던 죄에 대한 사죄의 마음과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버리는 부모나,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이라는 설정이 섬뜩해진다. 유괴 당시에 놀이터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놀았다거나, 버림받은 할머니들이 버려진 화분이나 마당 곳곳에 꽃을 심는다는 말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지가 보이는 것도 같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냉소적으로 객관화시키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삶이라는 것이 결국은 죄에 대한 사죄가 아니라 하더라도 끝없이 따뜻한 마음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