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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과수원

by 민휴


농사 일정에 맞춰 농부의 계절은 명명된다. 복숭아나무 가을 전정을 마쳤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계전정을 이제야 마친 셈이다. 옆지기가 벌에 쏘여 소생한 뒤로 한동안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 이상이 허비되었다. 체력이 바닥인 상태라서 일을 해나가기 힘들었다. 잘라 내야 할 위치에 있는 가지들(도장지)이 너무 통통하게 자라서 전동가위를 사용해야 했다. 필요 없는 가지를 키우느라 힘들었을 복숭아나무에게 미안할 일이다.



복숭아나무들이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충분히 저장해야 할 시기인데, 우리는 늦은 가지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년 2월에는 열매가 달릴 가지(결과지)를 만들 전정을 하면 된다. 가지치기를 최종 마무리하고, 이틀 동안은 가지를 복숭아밭 바깥으로 빼내는 작업을 했다. 예초기를 운전해 가는 뒷모습이나. 가지치기를 하는 뒷모습을 보면, 옆지기가 '진짜 살아났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해진다. 어렵게 살아났는데도, 농부가 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옆지기다.





요새는 수확기처럼 마음이 바쁘지는 않아서 오전 한나절은 수월하게 지나간다. 농장에 도착하면 밤새 혼자 있었던 지니를 챙기는 것이 급선무다.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도 비옷을 챙겨 입고 지니를 데리고 나가는 옆지기다. 지니는 비를 맞아도 좋은지 뜀을 뛰며 춤을 추며 난리가 났다.





지니가 너무 홀쭉해서 걱정이다. 진돗개의 특성이 입이 짧다고 한다. 운동장 같은 곳에서 마음껏 풀어놓고 키웠으면 좋겠는데 사냥 본능이 있어서 혹시라도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침에 멀리까지 목줄을 길게 늘여 산책을 다녀오는 일이 옆지기의 큰 책임이다. 지니한테 끌려 다니느라 덩달아 운동을 한다고 즐거워한다.



오전에는 그렇게 지니와 시간을 보내고, 몇 군데 풀도 뽑다가, 블루베리도 둘러보다가, 치울 곳이 있나 살펴보면 또 금방 오전이 지나고 밥먹을 시간이 된다. 오후에는 작심한 듯 일을 한다. 점점 낮의 길 짧아져서 6시쯤이면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가지치기를 마치고, 트럭에 가지들을 싣고 바깥으로 실어 날랐다. 그제와 어제 양 이틀 트럭이 고생을 많이 했다. 트럭이 열 일한다는 생각에 고맙기 그지없었다.





복숭아 밭에 가지들을 그냥 놓아둬도 된다. 임대사업소에 신청하면 파쇄 기계로 현장에서 파쇄해 주고 나뭇가지들은 농장에 거름이 되도록 뿌리는 농장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잘라 낸 가지에 병해충이 있을까 봐서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해 복숭아 밭에 가지를 남겨 놓지 않고 청소했다.



바깥 장소에 모아 놓으면 파쇄하러 오신 분들은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고 좋아하신다. 가지하나라도 떨어져 있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샅샅이 살펴서 모조리 치웠다. 풀들이 자라 있는 곳에 숨겨져 있는 나뭇가지들이 겨울에 숨바꼭질을 마치고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현재 확인이 가능한 가지들은 모두 치웠다.






이젠 비가 그치면, 병해충 방제를 해야 한다. 그것도 SS 기계를 장만한 후로는 크게 어렵지 않아서 부담이 덜하다. 거기까지 마무리되면,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쉼터 만드는 작업 돌입이다.



둘째는 언제 쉼터를 완성하냐고 보챈다. 일은 하나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목적은 단 하나 시계! 시계를 어디다 걸 것인지? 몇 개를 사 줄 것인지? 무슨 시계를 사 줄 것인지... 시계에 빠진 둘째다. 빨리 완성하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을 몰라 준다.



하나의 공정을 완성해 나가는 즐거움은 노동의 힘겨움을 이기고 만다. 깨끗해진 복숭아밭을 돌아보며 뿌듯하다. 몇 가지 공정만 마무리되면 심적 부담이 좀 줄 것 같다. 하루 이틀 날이 가면서 해결될 것 같다.



이번 비가 그치면, 블루베리 하우스의 보온커튼 설치 작업도 마무리될 것 같다. 철재 기둥과 끈들을 모두 설치가 되었다. 커튼을 올리면 되는데,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천이 젖으면 좋지 않기 때문에 거의 완성 단계에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보온 커튼이 완성된 모습이 보고 싶은데, 이 또한 날씨 탓에 며칠 더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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