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상 동시집 『세상 알아 가기』(가꿈, 2025)를 읽고
김종상 작가님은 1935년 경북 안동 출생. 1959년 《새벗》에 동시 당선,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동시집 『흙손 엄마』 『어머니 그 이름은』 『어머니 무명치마』 등과 동화집 『생각하는 느티나무』 『아기 사슴』 노랫말 동요곡집 『아기 잠자리』 등 문학 도서 60여 권과 교육 관련 저서 50여 종을 펴냈다.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 역임.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대한민국동요대상, 경향교육상, 한국교육자대상 등을 받았다. - 작가소개에서
『세상 알아 가기』 동시집 속에는 한 편 한 편 소망이 담겨 있다.
‘동시는 정을 뿌리로 피어난 사랑의 노래이다. 사랑의 노래인 동시를 많이 읽으면 마음속에 사랑의 꽃이 핀다. 꽃은 곱고 향기로우며 달디단 꿀을 갖고 모두를 기쁘게 한다. 동시를 열심히 읽어 고운 마음을 길러 주기를 바란다. 동시를 많이 읽으면 마음과 행위가 꽃처럼 고와지는 까닭이다. - 작가의 말에서’라는 김종상 작가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세상을 탐색해 가는 아가처럼 세상에 있는 고운 마음을 길어 올리는 동시들이다. 몇 편의 동시를 더 깊이 들여다보자.
찬바람에 여위는 역새 몇 줄기
시름에 잠겨 있는 구름 몇 조각
그래서 가을은 쓸쓸합니다
황혼에 물이 드는 빨간 단풍잎
산까치 날개 끝에 젖은 저녁놀
그래서 가을은 적막합니다.
― 「가을」 전문 (p17)
구름에 얹힌 시름을, 산까치 날개에 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인이라서 가능한 혜안과 정서가 아닐지 생각된다. 가을의 꽁무니를, 가을의 눈물을 더듬어 찾으며 김종상 작가님의 정서를 따라가 보고자 단풍잎, 은행잎, 왜가리의 날갯짓을 오래 살폈다. 가을은 정말 쓸쓸하고 적막하더라.
낮다고 하는 것은
높은 것이 있어서다
적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것과 비겨서다
싫다고 하는 것은
좋은 것을 봐서이다
견주어 보지 마라
나는 나일뿐이다.
― 「견주지 마라」 전문 (p21)
사람들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불행해진다. 자기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는 것을 대하며 슬퍼하고 실망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우리 귀한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기를 스스로 존귀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이 읽히는 힘 나는 동시다.
병을 앓아 봐야
아픔의 괴로움을 알고
굶주려 봐야
배고픔의 설움도 알고
혼자 있어 봐야
고독의 슬픔도 안다
겪어 보지 않고
어떻다 말하지 마라.
― 「경험」 전문 (p22)
김종상 작가님은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은 쓰지 않고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며 믿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올곧은 성품을 가진 사람, 아프고, 서럽고, 슬픈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정의감 넘치는 메시지가 보인다.
새가 앉았다 떠나가니
큰 가지는 잠잠한데
잔가지는 몸을 흔든다
어른들 생각보다
아이들 마음이 여리듯이
나무도 굵은 가지보다
작은 가지가 정이 많고
마음씨도 고운가 보다.
― 「나뭇가지」 전문 (p30)
잔가지의 흔들림을 아이들의 여리고 순수하고 정 많은 마음씨와 연결한 지점이 탁월하다. 나뭇가지를 보며, 새가 떠나가며 흔들리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잔가지를 아이로, 흔들림을 새와 나누는 작별 인사로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묵힌 생각이면 이토록 기발한 발상을 해 낼 수 있을까. 나무와 새의 사연이 그림처럼 저절로 상상되는 남다른 시상이 돋보인다.
뜨거운 햇볕에
바닷물을 말리면
뼈만 남는다
새하얀 소금
매서운 추위에
바닷물이 얼면
뼈만 남는다
새하얀 얼음
바닷물은
말라도 말라도
남는 것은 같다
투명한 물의 뼈
― 「물의 뼈」 전문 (p47)
물에도 뼈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시인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김종상 작가님은 물이 변화하는 상황을 알고, “물의 뼈”라는 말로 소금과 얼음을 규정한다. 아무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규정해 내는 세심한 관찰력과 안목이 두드러진다.
잘 알지, 향기 좋은
라일락꽃은 수수꽃다리며
가을을 대표하는
코스모스는 살살이꽃이라고
잎 넓은 가로수인
프라탄은 버즘나무란다
이 땅의 풀·나무는
우리말 이름으로 부르자.
― 「우리말」 전문 (p95)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보인다. 김종상 작가님이 펴낸 『동시에 담은 꽃과 나무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열심히 읽었다. 작가는 우리 야생화에 관심이 많다. 백과사전 같은 동시집이어서 꼼꼼하게 읽으며 꽃에 관해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꽃과 나무가 시, 그림, 설명이 함께 있어서 가까이 두고 가끔씩 들춰 읽고 있다. 이 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말로 쓰자고 주장하는 「우리 이름」이란 동시도 같은 맥락의 동시라서 참 좋았다.
『세상 알아 가기』는 불경, 비석 치기, 사색 인종, 수화 등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 올바르게 가르쳐주고 싶은 작가의 진심이 느껴진다. 이미 오랜 경륜을 자랑하는 작가는 도서관 몇 개 분량의 지식과 동심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 귀하고 소중한 자료들을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김종상 작가님의 마음이 보여서 이 동시집이 더욱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