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말이 아닌 '거리'로 증명됩니다.
며칠 째 춥던 날씨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모처럼 공원에 나온 동네 아이들도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릴 적 연을 날려본 경험은 한 번쯤 다 있을 것이다.
연을 더 높이 띄우고 싶어 줄을 꽉 잡아당기면 연은 잠시 버티다 이내 고꾸라졌다.
반대로 ‘이제 떴다’ 싶어 줄을 확 풀어버리면 방향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그때는 몰랐다. 연이 높이 날기 위해 필요한 건 힘도 기술도 아닌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의 미묘한 '감각'이라는 것을...
조직 안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며 조직과 사람을 바라보다 보니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1.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 그 고독한 줄타기
조직에는 두 가지 유형의 리더가 있다. 불안한 마음에 모든 걸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리더 그리고 "믿고 맡긴다"며 한 발 물러서 방임하는 리더.
전자는 책임을 지고 싶어서이고 후자는 자율을 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꽉 잡힌 조직은 숨 막혀하고 느슨한 조직은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리더십의 핵심은 통제와 방임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의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줄을 놓지 않되 잡아당기지 않는 상태. 연결은 유지하되 개입은 최소화하는 상태.
이 감각은 매뉴얼로 배울 수 없다. 오직 현장에서 수많은 실패를 통해 온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2. 바람을 탓하지 않는 태도
연은 바람 없이는 날 수 없다. 하지만 바람이 거세다고 해서 모든 연이 높이 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바람 속에서도 어떤 연은 솟구치고 어떤 연은 추락한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시장 악화, 구조조정, 급격한 변화... 리더들은 종종 바람을 탓한다.
"경기가 안 좋아서"
"MZ세대는 달라서"
하지만 냉정히 보면 문제는 바람 자체가 아니라 그 바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리더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바람의 방향을 읽고
언제 줄을 감고 풀지를 판단해 위기를 추진력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3. 믿음은 '거리'로 증명된다 (Empowerment)
연이 가장 아름답게 비행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역설적이게도 내 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이다.
작게 보일 만큼 멀리 보내야 비로소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그 연을 우러러본다.
구성원이 성장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리더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통해 생각이 자랄 수 있다.
하지만 리더에게 '줄을 푼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공포이다.
"내가 안 보는데 잘할 수 있을까?"
"사고 치면 어쩌지?"
그 불안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구성원이 크지 못하는 이유는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리더인 우리가 아직 줄을 충분히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믿음은 말로 표현되는 감정이 아니라
거리 두기로 증명되는 선택이다."
4. 연은 하늘에, 책임은 땅에
연이 구름 뚫고 높이 날아올라도 연을 날리는 사람은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선은 한시도 연에서 떼지 않아야 한다.
조직에서의 스포트라이트는 하늘을 나는 구성원에게 돌아가야 한다.
반면, 줄을 잡고 버티는 고단함과 책임은 땅에 선 리더의 몫이다. 성과가 나면 연이 잘 날아서이고 추락하면 줄을 잡은 내 탓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줄은 지금 어떤가?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리더가 '나는 줄을 잘 잡고 있다'라고 착각하는 순간이다.
이미 연결은 끊어졌는데 손에 감긴 줄의 감촉만 믿고 있거나 아직 날 준비가 안 된 연을 '자율'이란 핑계로 놓아버린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리더십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필요한 텐션을
끊임없이 감각으로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나는 줄을 어떻게 잡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