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연주자를 한순간에 집중시키는 단 하나의 소리
오케스트라 공연장, 지휘자가 입장하기 직전의 그 찰나를 기억하는가?
100여 명의 단원이 무대 위로 오르고 관객의 숨소리조차 잦아들 무렵, 정적을 깨는 기묘하고도 선명한 음 하나가 들려온다.
"삐-" 하고 길게 울려 퍼지는 기준음 '라(A)'.
화려한 바이올린도, 웅장한 트럼펫도 아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의외로 작고 단아한 목관악기 오보에(Oboe)다.
TV 속 장면으로만 보던 오케스트라를 실제로 마주한 건 얼마 전이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티켓 한 장 덕분에 생전 처음 클래식 공연장의 붉은 좌석에 앉게 되었다. 뮤지컬이나 콘서트의 열기와는 다른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케스트라의 공연도 물론 훌륭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한 장면이 있었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지휘자가 등장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튜닝(Tuning)'의 시간이었다.
악장이 신호를 주자 오보에 수석 연주자가 '라'음을 길게 불었고, 그 순간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할 것 없이 모든 악기가 이 작은 악기의 소리에 맞춰 일제히 자신의 음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잠깐 이었던 순간 그 장면은 나에게 많은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왜 하필 오보에일까? 그 수많은 악기 중 왜 오보에가 전체의 기준을 잡는 '기준음'을 내게 된 걸까?"
화려한 기교의 바이올린을 제치고, 웅장한 소리의 금관악기를 뒤로한 채 오보에가 기준이 된 데에는 흥미로운 과학적,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확인하고 보니, 자연스레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과 '리더십'의 본질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1. 소음 속에서도 들리는 '선명함'
오보에는 배음(Harmonics)이 매우 풍부한 악기다. 그 덕분에 소리가 아주 날카롭고 선명하게 들리는 특징이 있다. 수십 대의 현악기가 소란스럽게 소리를 내고 있어도 오보에 특유의 비음 섞인 맑은 소리는 모든 연주자의 귀에 화살처럼 정확하게 꽂힌다.
조직의 메시지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리더의 철학이나 조직의 목표는 굳이 화려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소음(Noise)과 혼란 속에서도 구성원들이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명료하고 선명한가'이다.
2. 환경에 굴하지 않는 '고집'
오보에는 구조적으로 음정을 조절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악기다. 두 장의 대나무 조각(리드)을 입에 물고 연주하는데 한번 세팅된 음정은 주변 온도나 습도 변화에도 다른 악기들에 비해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된다.
현악기는 줄의 장력에 따라 금관악기는 관의 길이나 입술의 힘에 따라 음의 변동 폭이 크다. 그렇기에 '가장 안 변하는 악기가 기준을 잡는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냉철한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는 원칙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경기가 어려울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이 '기준'이라면 그 조직은 결코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수 없다.
3.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오케스트라 초기 형성 단계에서 오보에는 가장 먼저 합류한 목관 악기 중 하나였다. 당시 목관 악기들 중에서 가장 소리가 컸고 믿음직한 기준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라는 관습이 아니다. 오랜 시간 검증된 '실력 기반의 권위'가 전통이 된 것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부여되는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증명해 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오보에의 '라' 음에 맞춰 100명의 단원이 일제히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제 시선을 돌려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조직'이라는 무대를 바라본다.
지금, 당신의 조직에는 '오보에'가 있는가?
혹시 명확한 근거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기준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원칙 때문에 구성원들은 각자 다른 음을 내며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오케스트라의 튜닝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의 조율이 2시간의 완벽한 심포니를 만든다.
우리는 어쩌면,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튜닝'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한 연주를 꿈꾸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과연 누구를 보고 기준을 맞추며 행동해야 할까?
그들이 길을 잃었을 때 '라'음처럼 선명하게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는 리더가
지금 우리 조직에는 존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