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자전거를 배운 이후로, 주말에 한강에 나가서 10km 정도 라이딩을 하곤 하는데, 처음에는 힘들어하더니 요즘은 곧잘 따라오는 편이다. 집에서 뒹구르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녀석인데 이렇게 밖으로 꼬셔내기에는 자전거만 한 아이템이 없다. 한강도 좋지만, 매번 같은 코스를 다니다 보니 조금 지루한 면도 있어서, 이번에는 조금 멀리 나가 보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몇 달째 타의로 칩거 중인 아버지께도 말씀드려서 '3 부자 라이딩 캠핑 클럽'을 결성했다.
이번에 라이딩 & 캠핑으로 낙점한 장소는 '임진각 평화누리 캠핑장'이다. 서울에서 단 한 시간 거리이고, 자유로와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한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4월~6월 기간에는 자리 잡는 게 정말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 그나마 라이딩을 나갔던 날이 3월이었고 금요일 오후인지라 겨우 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카라반이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라 하여도 직수나 오수 연결이 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카라반 유저보다는 큰 텐트를 가지신 일반 캠퍼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곳 같다. 나무가 우거든 곳은 아니기 때문에 한낮의 땡볕을 피할 수 없는 사이트이고, 그래서인지 봄과 가을에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임진각을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는 평소에 평화누리 8코스를 눈여겨 뒀기 때문이었다. 파주에서 조선시대의 유명한 위인을 뽑으라고 한다면, 황의 정승과 율곡 이이를 말하기 마련인데, 재미있게도 평화누리 8코스는 황희 정승이 지었다고 하는 '반구정'에서 율곡 이이가 지었다고 하는 '화석정'까지의 편도 10km 정도의 코스이다. 중간에 우리가 머무는 캠핑장이 있기 때문에 첫날은 캠핑장~반구정, 둘째 날은 캠핑장~화석정을 라이딩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픽업하고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자전거까지 매달아서 가야 하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아이도 이제 몇 번 따라온 덕에 조수 역할을 잘해줬다. 아버지는 캠핑장으로 직접 오셔서 짐정리를 하셨고, 해질 무렵부터 첫날 라이딩을 시작하였다. 내가 길을 찾아야 하니 선두에 서고, 아버지가 후미를 맡아 주셔서, 아들이 중간에서 다른 데로 새지 않도록 했다. 사실 아들은 늘 자전거 도로만 다녀보다가 처음으로 일반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거라, 이날 유독 긴장을 많이 했었다.
임진각까지는 경의선이 운행을 해서 이렇게 중간에 기찻길이 있는데 선로 차단봉이 참 예스러웠다. 기찻길 너머로 떨어지는 해와, 붉은 노을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건 내게만 해당되는 감성이었고, 뒤에서 아들은 힘들다고 투덜투덜.. 왕복 5km 밖에 안 다녀왔지만 이미 20km는 다녀온 듯하다. 배가 고픈 모양이다.
카라반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했다. 라이딩 전에 오븐에 올려놓았던 통삼겹 훈제구이가 아주 근사하게 익어 있었다. 재빠르게 된장찌개를 하나 끓여내고 저녁상을 차렸다. 요즘에는 일이 바쁘다고 아버지랑 술 한잔 할 기회도 없었는데, 이렇게 밖에서 운동도 하고 약주도 한잔 함이 참 좋았다. 식사 후에는 자연스레 화로대를 꺼내 장작을 때우며 남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날이 추웠던 지라 모닥불의 따듯함이 무척 좋았다.
피곤한 덕에 잠을 아주 푹 자고 일어났는데, 아뿔싸 비가 오기 시작한다. 새벽에만 조금 내릴 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꽤 굵은 비가 내리는 것이 오전 내내 이럴 모양이다. 계획했던 메인 라이딩은 둘째 날인데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안개도 짙게 내리 앉은 평화누리 공원 산책을 하였다. 날씨도 쌀쌀하고 비까지 오니 공원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토요일 오후부터는 아이가 학원 스케줄이 있었지만, 이렇게 세 사람이 시간 맞춰 나오기도 어려운지라,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일단 카라반은 캠핑장에서 철수해서 주차장으로 옮겨 두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1시가 되니 비가 그쳤다. 길이 많이 미끄러울 것 같아 조심에 조심을 하기로 하고 2번째 라이딩을 출발했다.
첫날 반구정으로 가는 길은 1차로 정도의 차로였기 때문에 라이딩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풍경에 그렇게 감탄을 할 코스는 아니었다. 반면 둘째 날 간 화석정으로의 길은 대부분이 농로였던 것 같다. 길 양쪽으로 논이 쭉 펼쳐져 있는 '논풍'이 아주 일품이었다. 가는 길의 풍경이 너무 좋았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바닥이 나서 사진을 많이 찍지를 못해 정말 아쉬웠다. 남기고 싶은 풍경이 많았지만, 올 때 찍으면 될 것이라는 마음에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돌아올 때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할 상황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었다.
편도 11km 정도 되었던 임진각~화석정 코스를 완주하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아직 라이딩 초보인 아들에게 울퉁불퉁한 농로도 어려웠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던 코스에 방전이 돼버린 것. 나도 많이 당황했던 건 11km 내내 편의점은커녕 가게도 하나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쉬어가며 에너지를 충전해 줘야 하는데, 그저 출발할 때 챙겨간 에너지바와 물 한 통이 전부여서 아이의 체력 방전을 막기에는 완전 역부족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화석정 앞에 조그만 매점이 있다고 해서 그 기대를 가지고 겨우 겨우 아이를 독려하며 가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린 것이다.
화석정에서 바라본 임진강 풍경은 최고로 좋았다. 다만 다시 캠핑카로 어찌 돌아가야 하나라는 걱정이 가득해서 풍경을 내리 즐기지는 못했을 뿐. 화석정 관리사무소를 겸하고 있는 매점은 50년은 되어 보였다.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는데 다행히 컵라면도 팔고 따듯한 코코아도 타 주셔서 한참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 매점마저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아찔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돌아가는 길도 3시간이 걸린다면 가로등도 없는 좁은 농로의 길을 자전거로 헤매야 할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세 사람 모두의 핸드폰이 방전되었다. 오는 내내 내비게이션을 켜고 왔고, 아이가 계속 힘들어해서 배터리 상황을 전혀 챙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름답게 시작했던 3 부자 캠핑이 스릴러 혹은 재난 구조물로 변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를 했다. 돌아오는 길은 한 시간 남짓 걸렸던 것 같다. 컵라면 하나에 기운을 충전한 아들이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라이딩을 하니 속도가 두 배는 붙어서 씽씽 내달렸다. 내비게이션이 없는 탓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농로 속에서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느라 나는 두 배는 더 라이딩을 한 것 같다. 아마 아들과 둘이 왔으면 정말 깜깜한 밤에 논바닥에서 119에 구조 신청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앞에서 길을 찾아 헤맬 때 뒤에서 아버지가 손자를 다독이고 격려해 주시니, 아이가 기운을 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왔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큰 사고 없이, 어두워지기 전에 카라반에 도착했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아버지와 나는 좋은 추억이라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는 그 이후로 3개월 동안은 자전거를 쳐다도 안 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