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급 이상의 카라반은 보통 퀸 사이즈의 매트리스를 가지고 있는데, 침대를 들어 올리면 그 면적만큼의 트렁크가 나오는 구조가 많다. 우리 집 카라반도 이 정도의 적재 공간이 나오는데,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캠핑 짐을 다 쓸어 담고도 공간이 남아 있다. 예전에 캠핑을 다닐 때는 승용차 트렁크 공간이라는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적재공간의 한계가 있어서, 언제나 물건을 살 때 사이즈에 대한 압박이 컸었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에서 해방인 거다. 또 옷장과 수납공간도 넉넉하게 있는 편이라, 가을과 같은 간절기에는 밤에만 입을 점퍼와 물놀이에 대비한 여벌 옷들은 그냥 카라반에 늘 보관을 해 두는 편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상황도 설정이 아닌 리얼이 될 수 있다. "내일 동해나 갈까? 먹을 거야 새벽 배송으로 받으면 되고, 옷만 좀 챙겨서 출발하자"
동해안 1박 2일.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기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우리 부부는 차가 막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아들만 둘이 있다 보니 좁은 차 안에서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청각이 마비되고, 정신줄을 놓기 십상이다. 카라반 여행을 하면서부터는, 금요일 밤 10시 이후에 출발을 한다. 중간 기점으로 늘 가는 휴게소가 있는데, 보통 도착하면 밤 12시나 1시쯤 된다. 휴게소 조용한 곳에 차를 세우고, 얼른 아이들과 함께 뒤에 매달린 카라반으로 이동한다. 사실 아이들은 집에서 모두 이도 닦고 잠옷에 인형까지 준비해서 차에 탔었고, 그렇게 그대로 휴게소 차박을 하는 것이다. 화장실도 카라반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서 좋다. 보통 아침에는 7시나 8시쯤 일어나서 캠핑장으로 이동하는데, 설악산이나 동해안 쪽을 목적지로 삼아도 아침 9시에는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토요일 하루를 알차게 여행하면서 보낼 수 있는 편이다. 저녁에 캠핑장으로 돌아와서는 BBQ와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날 일요일 아침은 보통 느긋하게 캠핑장에서 휴식을 취한다. 점심때쯤 짐을 챙겨 돌아와도 집에 오면 4시쯤 되니 다음 날 출근이나 등교에 그렇게 부담되지 않아서 좋은 편이다.
운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고 물어보는 것 중 하나는 그렇게 커다란 트레일러를 어떻게 매달고 다니느냐 이다. 사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500급 트레일러는 소형 트레일러 면허 취득도 필요하다. 그런데 첫 운전만 너무도 어렵지, 한 두 번 몰아 보면 금세 익숙해진다. 그리고 절대로 80km 이상으로 과속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운전이 쉽다. 고속도로에서 80km로 달리려고 한다면 절대 추월을 할 수 없기 때문. 무조건 3차선 혹은 2차선으로 가야 한다. 차선 변경을 아예 포기하고 가다 보면 생각보다 매우 운전이 편안해지는 구나를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칼치기를 하고 다녔을까?라는 인생의 깨달음도 얻게 되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을 때이다. 휴게소에서는 잠시 카라반으로 건너가 오분 십분 정도만 침대에 누워서 쭉 스트레칭을 하면서 쉬는데, 그럴 때는 피로가 싹 달아나고 충전이 되는 느낌이다.
먹방 캠핑은 그만. 진정한 국내 여행 즐기기
우리 가족은 카라반 여행을 하면서 캠핑 요리에 대한 부담을 줄이게 되었다. 캠핑도 가끔 가면 왠지 먹방 파티를 해야 할 것 의무감이 든다. 점심에 국수, 디저트로 새우튀김, 저녁엔 삼겹살에 곱창, 야식으로는 라면, 캠프파이어하면서는 마시멜로.. 그런데 이런 것도 하다 보면 질리고, 준비하고 치우는 과정도 지치는 일이다. 예전에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저 의무감에 이 모든 것을 저 혼자 해냈으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카라반 생활을 하게 되면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 가스오븐, 냉장고 등의 주방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특별한 음식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매번 먹는 간단한 집밥을 하는 편인데, 특히 요즘은 밀 키트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한 끼용으로 사가서 해 먹으면 정말 편하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여행에 투자한다. 전에는 캠핑을 가면 캠핑장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텐트 치고, 음식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카라반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꼭 그 지방의 관광지를 한 군데씩 가보려 한다. 트래킹도 좋고, 등산도 좋다. 앞으로 3년간 국내의 경치 좋은 곳들은 한 번씩 가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자주 여행 가기. 자주 마주 보기. 자주 이야기 하기.
사실 가장 좋은 부분은 이 것 아닐까. 작년 가을에는 한 달에 두 번씩 카라반 여행을 다녔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낮에 트래킹을 하면서 대화하고, 저녁에 캠프 파이어를 하면서도 대화하면서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이해를 나눌 수 있었다. 카라반 여행까지 와서는 핸드폰도 잘 안 보게 된다. 사진도 잘 안 찍는 편이다. 그냥 자연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공유하고, 웃고 떠들기.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하늘이 너무 예쁘고, 밤에 별 보기도 너무 좋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집에 있겠다고 할 테니, 그러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