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은 개개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취미인지라, '최애 캠핑장'의 정의도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다. 일 년 정도 카라반 캠핑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우리 가족만의 캠핑 스타일이 생겨났고, 우리들만의 최애 캠핑장도 정해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가족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카라반을 사면 언제든 캠핑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 데 실상은 좀 달랐다.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노지'는 주말에는 차박족으로 언제나 만원이고, 그나마 요즘에는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주차 금지 봉이 설치된 곳이 태반이라고 한다. 돈을 내고 갈 수 있는 캠핑장도 예약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카라반 생활에 필수인 청수관과 오수관이 있는 곳이 주로 인기 캠핑장인데, 한 달 전에 예약이 오픈되어도 보통 1초 컷으로 예약이 완료되곤 한다. 다음 주말에 캠핑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우리 가족의 현실에서, 이런 고급진 캠핑장을 무작정 잡아 놓는다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정말 어렵사리 한자리 예약을 했는데, '미안해 이번 주는 캠핑을 못 가게 되었어'라는 배우자의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의 상처는 어찌 치료하겠는가...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내일 갈 캠핑장에 오늘 전화해도 상관이 없는 곳이 필요했다.
캠핑장에서의 인구 밀도도 우리 가족에게는 매우 중요한 우선 요소였다. 누구나 전세 캠핑을 꿈꾸고, 한적한 캠핑장을 선호하지만,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절실한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 둘이 다 남자 아이다 보니, 일반 대화를 나눌 때도 다른 집보다는 시끄러운 편이고, 여기에 조금만 탠션이 가해진다고 하면, 흔히 말하는 민폐 캠퍼가 되기 십상이다. 때문에 저녁만 되면 아이들 소리 통제에 입씨름을 많이 하게 된다. 카라반 캠핑 초기에는 남들이 많이 가는 소위 '유명' 캠장을 많이 갔었는데, 가는 곳마다 난민촌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에 질렸었고, 그런 환경에서 주변에 시끄러운 집으로 인식되는 것도 불편했다. 조금은 시설이 낡아도 사람 없는 곳에서 있는 것이 마음 편했고, 그런 캠핑에서야 휴식 다운 휴식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주말임에도 예약 전쟁을 피하고, 사람도 없는 캠핑장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이런 조건의 캠핑장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로망 같은 것이었다. 경기도권에서도 아직 이런 캠핑장은 찾지를 못하였고, 유일하게 양양에서 딱 마음에 드는 캠핑장을 찾아냈다.
처음 캠핑장을 갔을 때는 가을이었다. 캠핑장이 꽤 넓은 편이라, 공터도 있고, 숲 속도 있는데, 와이프와 나는 숲 속의 단풍 풍경에 반해버렸었다. "이렇게 좋은 풍경인데 왜 사람이 하나도 없지?" 주말임에도 숲 속 사이트는 텅 비어 있었고, 캠장님도 자리를 넉넉히 주셔서 말 그대로 전세 캠을 즐겼었다. 다음 해 봄에 다시 찾아간 캠핑장. 녹음이 푸르른 그곳에서 3일 동안 풀벌레 소리 실컷 듣고 힐링하며 지냈었다.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간식 먹으며 시간 보내고, 와이프가 좋아하는 별 보기도 실컷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캠핑장의 시설을 논하자면, 시설이 그렇게 우수한 곳은 아니다. 전해 듣기로는 설악산 보호지구에 속하는 대지여서, 쉽사리 건물을 증축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면장과 개수대가 있는 편의동 건물이 조금 낙후된 편이다. 하지만 캠장님이 관리를 깨끗이 하셔서 쓰는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우리는 카라반 안에서 대부분의 일들을 해결하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캠핑장 안에서의 사이트 인기도도 우리 가족과 다른 이용객들 간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워낙 산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와이프에게는 이곳이 최애 장소인 반면, 다른 캠퍼들은 시야가 탁 트인 운동장 사이트나, 계곡이 바로 앞에 있는 계곡 사이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래 저래 사람들 있는 곳을 싫어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그야 말래 딱 맞는 '최애' 캠핑장이다.
같은 캠핑장을 연속으로 세 번 정도 방문하고 난 뒤였던가. 캠장님이 제안을 하셨다. "운전도 잘 못하는 거 같은데, 뭐 하러 서울에서 여기까지 끌고 다녀요? 다음에도 여기 올 거면, 그냥 두고 가시지." 이때부터 캠핑 스타일이 변하게 되었다. 유목민처럼 이곳저곳 유명한 캠핑장 기웃거리지 않고, 한 곳만 계속 가는 스타일로. 그때까지는 카라반을 파주 쪽에 주차해 놓고 있던 터라, 캠핑을 오고 갈 때 카라반 주차로만 왕복 2시간은 소요하고 있었다. 그러니 너무도 반가운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카라반 보관을 외지에 할 때는 월 주차료를 내야 하는데, 캠장님은 그것도 마다하셨다. 어차피 노는 땅인데 상관이 없으시다고. 예약을 할 필요가 없는 캠핑장이니, '오늘 캠핑갈래?' 해서 서로 뜻이 맞으면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카라반이 정박형이 되어 버리니, 견인의 부담이 없어서 운전도 훨씬 편해졌다. 도착하면 카라반이 세팅되어 있으니, 보일러만 켜고 바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우리는 카라반을 베이스캠프 삼아 주변 산, 바다를 열심히 여행 다녔다. 양양과 속초는 사시사철 매력이 넘치는 설악산과, 캠퍼들의 성지 동해 바다가 인근에 있는 곳이었다. 다닐 곳이 너무도 많은 곳이라, 4년이 지난 지금도 지루할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