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을 구매했으니 캠핑을 나서야 하는데, 한동안은 운전이 무서워서 잘 모셔만 두었다. 견인차가 코란도였는데, 여기에 500급 카라반을 연결하면 총길이가 거의 10미터는 되었다. 대형 버스만 한 크기의 차를 끌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길을 가다 카라반 체결이 끊어지면 어쩌나, 우회전하다가 옆에 있는 차를 박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끊이지를 않았다.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상황은 유턴! 아무리 큰 차선에서도 절대 한 번에 유턴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4차선 도로에 차가 전부 걸쳐서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고 쩔쩔맸던 적도 있다. 그 후로는 무조건 도착지까지의 경로를 인터넷 미리 보기로 확인하고 혹시나 유턴이나 좁은 골목길은 없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당시에 카라반을 운정에 있는 아버님 회사 주차장에 보관했었는데, 운정에서 집까지 몇 번 운반하고 나서야 심리적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구매 후 1달 만에 드디어 첫 출정을 나서게 되었다.
500급 카라반은 길이가 길기 때문에 일반 캠핑장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설령 사이트가 널찍한 캠핑장이라 하여도 입구에 조그만 둔턱이라도 있으면 카라반이 걸려 버려 진입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초보 카라반 유저라면 웬만하면 카라반 전용 캠핑 사이트가 있는 곳을 가는 게 좋다. 특히 이런 곳은 전기뿐 아니라 청수와 오수를 카라반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시설이 있기 때문에 일반 캠핑장에 비하여 무척 편리하다. 아쉬운 부분은, 예약이 몹시 치열하다는 점. 유럽식 카라반은 외부에 청수와 오수를 연결하는 커넥터가 있는데, 유럽 거의 모든 캠핑장에 이러한 RV를 위한 유틸리티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시설의 캠핑장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RV 캠퍼들은 넘쳐나는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니 예약전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도 처음이라 정말 열심히 매주 예약을 했다. 그렇게 처음 가게 된 캠핑장이 횡성자연휴양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운전이 편리했고, 사설 캠핑장이기 때문에 국립보다는 가격이 비싼 편이라 상대적으로 예약 전쟁이 좀 덜 치열했다. 첫 출정을 나가기 전날, 엄청나게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서 카라반으로 부지런히 짐을 옮겼다. 그동안의 캠핑 장비를 전부 카라반 창고로 옮기는 작업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캠핑장 가서 짐정리할 일은 없다는 생각에 속이 다 후련했다. 드디어 D-Day. 나이 40이 돼서도 무언가를 그렇게 원했던 적이 없어서 그런가. 코로나 시절로 늘 우울해서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행복의 도파민이 폭발했다. 캠핑날 출발일 아침은 넘치는 짐 준비와 시간의 압박으로 늘 스트레스 상태였는데, 이건 새로운 변화였다. 카라반 운전도 많이 익숙해져서, 큰 어려움 없이 2시간 정도 운전하여 캠핑장에 도착하였다. 가족들이 다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신중하게 행동했는지 모른다. 카라반 네 귀퉁이에 있는 발을 내려 수평을 잡고, 전기와 청수관, 오수관을 연결하니 세팅은 끝이 났다.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놀고 나는 침대에 누워 한잠을 잤다. 이 맛이구나.
점심을 먹고 인근에 경치 좋은 트래킹 코스가 있다고 해서 차를 몰고 나와 보았다. 횡성호수길 코스인데,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시는 트래킹 코스였고,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걷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걷는 길 주변에 꽃이나 나무들이 있어 눈이 심심하지 않았고, 곳곳에 호수를 배경으로 하는 뷰포인트가 있어 사진 찍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전체 코스가 4.5km이고 어른 걸음으로 2시간 이상 소요되는 곳이라, 우리 아이들에게는 짧은 거리는 아니었는데도 잘 따라와 주어 기분 좋게 트래킹을 마무리하였다. 캠핑을 가서 인근 지역 관광 포인트를 가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동과 세팅에 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니, 서로가 기분 좋게 여행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 카라반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둑어둑 해졌다. 다들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하여 급하게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은 옛날 경양식 스타일의 돈까지 정식. 이런 음식 스타일 또한 카라반 캠핑을 하면서 변화된 모습인데, 주방이 거의 집과 유사하게 구비되다 보니, 집에서 약간만 준비를 해오면 많은 음식들을 집에서 처럼 할 수 있어서 '캠핑 = 삼겹살' 공식이 깨지게 되는 것 같다. 돈가스는 늘 환영인 아이들도 엄청 신나 하며 맛있게 먹어주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카라반 앞마당에 모여 앉아 캠프 파이어를 즐기며, 밤하늘의 별구경도 하고, 하루 좋았던 일들도 이야기하였다. 마침 날이 맑았는데, 실제로 모닥불이 꺼져가는 깊은 밤에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을 찾아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피곤했는지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이전에 텐트 생활을 할 때는 늘 아이들을 가운데 재우고 엄마 아빠는 텐트 외곽에서 잠을 자다 보니 춥고, 허리가 아파서 오래 잘 수가 없었는데, 늦잠이라니! 카라반에서 나와 커피 한잔 마시며 남은 잠을 쫓아내고 여유를 즐겼다. 코로나로 밖에를 못 나가게 되면서 이런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망중한을 즐긴 지도 참 오래된 것 같았다. 어렵게 마련한 우리 가족의 코로나 은신처에서 이젠 자주 쉼을 가지려 한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으로 따듯한 국밥을 먹이고, 간단하게 짐 정리하여 서울로 올라왔다. 길도 별로 안 막혀서 집에 도착하니 점심 즈음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 치고는 꽤 알차게 보낸 것 같다. 카라반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