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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Feb 10. 2021

제철 과일

주말이 되면 집근처에 있는 망원 시장을 자주 간다. 몇 년전 예능 프로그램에 연예인이 닭강정 사먹는 모습이 나오는 바람에 유명세를 탄 곳이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냥 동네 재래시장이다. 현지인 답게 가장 사람이 안붐비되 물건은 좋은 곳을 엄선하여 다녀 오는 편이다. 이렇게 다닌 지도 벌써 10년이 다되가다 보니 사장님과 인사도 자연스레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과일 가게 사장님은 우리 가족을 꽤 좋아하시는 편이다. 와이프나 아이들이 모두 과일홀릭이기 때문에 한주에 식비 중 과일이 절반은 차지하기 때문! 


와이프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제철 과일이 나오면 늘 첫달에만 즐겨 먹는다. 가격도 비싸고 당도도 부족한 첫 달을 왜그리 선호하는지는 모르지만, 사장님도 알고 나도 알기 때문에, 늘 과일 가게 앞에서는 그녀와 실랑이를 벌인다. 와이프는 사달라고 떼를 쓰고, 사장님과 나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리는 모습이다.


어찌되었건 그녀 덕분에 제철 과일에 대해서는 일종의 리츄얼이 생겨 났다. 수박은 6월 부터, 복숭아는 7월부터, 귤은 11월부터, 딸기는 12월 부터 먹어야 한다는 그녀의 지론 덕분에, 우리는 그 해의 첫 과일을 구입하고 먹게 될 때 꽤 신중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맛을 즐기는 것이다. 그 많은 과일을 사와야 하고, 깎아야 하고, 서빙해야 하는 나는 꽤나 번거로운 일이지만, 한해 한해 지나고 나니 그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된다.


지난 주에는 시장에 나가보니 드디어 씨알이 작은 딸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12월의 딸기는 와이프 몫이지만 2월의 딸기는 나와 막내의 몫이다. 이맘때 쯤 나오는 이 작은 딸기를 사와서 딸기청을 하는 것이 막내와 나의 2월 약속 같은 셈. 이런 소소한 작은 약속들이 삶을 풍부하게 감싸준다.


첫번째 딸기 청이기 때문에 우선 작은 한팩만 사왔다. 깨끗이 씻어낸 후 작게 잘라내는 것은 막내의 몫. 그동안 나는 저장용기를 삶고 설탕을 준비해 둔다. 작년에는 1:1 비율로 설탕에 재웠는데, 아무리 단 것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지만, 너무 달다는 의견이 많아서 올해는 1:0.5 비율로 설탕에 재워주었다. 500cc 짜리 보관 용기에 딱 맞게 들어간다. 이렇게 3일만 재워두면 맛있는 딸기청이 만들어진다. 수제 딸기청에 우유를 섞어 먹으면 스타벅스에서 파는 딸기라떼가 부럽지 않을 맛이 된다. 와이프는 스파클링 워터에 타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딸기청의 화룡정점은 딸기 아이스크림! 블루베리, 생크림과 함께 섞은 후 얼려서 만드는 데 맛이 정말 좋다. 간단한 딸기청 하나로 겨울 내내 즐길만한 홈메이드 간식이 생기는 셈이다. 


첫 번째 딸기청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막내가, 다음주에는 한라봉 청도 만들어 보자고 한다. 일곱 살 꼬맹이 머릿 속에서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신기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요리는 이래서 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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