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선]
겨울 내내 나는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매달렸다. 스스로를 살리는 일은 지독한 고립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 계절을 지나오며 배웠다. 몸에 붙은 헌 옷을 벗어내고, 나를 찌르는 손톱을 깎아내며, 밀려오는 우울의 파도를 지층으로 삼아 버티던 시간들. 그 지독한 추위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 내 안의 정직한 민낯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 안에서 오직 나의 비명과 호흡에만 집중했던 그 혹독한 침묵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골조를 재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공정이었다.
이제 방 밖으로 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계절은 어느새 공기의 질감을 바꾸어 놓았다.
나의 계절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모두가 따뜻한 봄을 향해 걸어갈 때, 나는 가장 시린 겨울의 끝에서 이제 겨우 가을의 문턱에 도착했다. 시간을 거슬러 걷는 이 여행은 나를 옥죄던 허물을 벗어던지고 가장 뜨거웠던 나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순서대로 되짚어가는 치열한 역주행이다. 죽어있던 감각을 깨우는 겨울을 지나, 이제는 타인이라는 숲을 마주해야 하는 가을의 초입에 선 것이다.
가을의 공기는 정직하다. 여름의 습기가 가려버렸던 사물들의 서늘한 윤곽이 비로소 선명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직 나를 응시하는 침묵의 시간이었다면, 가을은 회복된 시력으로 내 밖의 풍경을 견뎌내는 시간이다. 나를 돌보느라 침침해졌던 시야가 걷히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당신의 정면이 아닌 묵묵한 뒷모습이었다.
그동안 나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에 지쳐 있었다. 미용실 거울 너머로 마주하던 수많은 표정과 그 표정 뒤에 숨겨진 요구들, 나를 평가하고 재단하던 그 날선 눈동자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구원하는 겨울을 통과하며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타인의 시선들 역시, 사실은 자신의 계절을 버텨내느라 잔뜩 웅크린 채 내보낸 외로운 신호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가을 동안, 세상과 조금 비스듬한 시선으로 마주 앉아보기로 했다. 정면으로 마주 보는 시선은 때로 폭력이 되기도 하지만, 비스듬히 곁을 내어주는 시선은 온기가 된다. 그것은 뜨거운 연민이라기보다는 홀로 서 있는 서로의 고독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예의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나의 구원을 위해 고투했듯, 당신 역시 당신의 계절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무들이 서로의 하늘을 침범하지 않으려 가지 끝을 멈추듯, 우리는 같은 숲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감각만으로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다. 닿지 않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멀어져야 비로소 소중해지는 이름들을 가을의 문장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이를 상실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이를 '이면의 발견'이라 부르고 싶다.
나의 시계는 이제 가을에 멈춰 섰다. 낙엽 소리는 누군가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바닥에 쌓인 그 마른 소리들을 들으며 당신이 두고 간 흔적들을 가만히 쓸어 담는다. 때로는 청첩장이라는 이름의 서글픈 고지서에 실망하고, 때로는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이의 손등에서 나의 미래를 발견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나'라는 좁은 성벽을 허물고 '우리'라는 넓은 영토로 나아가는 이주임을 믿는다.
그 미세한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당신이라는 이면을 가만히 읽어 내려가려 한다. 이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가장 뜨거운 계절을 향해, 이제 다시 한 걸음씩 거꾸로 걸어가기로 했다.
나의 가을이 당신의 뒷모습에 닿아 작은 그늘이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각자의 정박지에서 서로의 온기를 조금은 더 신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