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설명하려 할수록 흐려지는 마음

by 김민경




식탁 위에 놓인 삶은 밤을 보면 여전히 입안이 거칠어진다. 사람들은 가을의 별미라며 포슬포슬한 속살을 수저로 파내지만, 내게 밤은 고소한 간식이 아니라 목구멍에 턱 걸려버린 침묵의 덩어리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밤을 마주할 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그 시절의 눅눅한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건 부모님이 갈라선 직후였다. 어머니는 홀로서기를 위해 타지로 떠나야 했고, 생존의 현장에 어린 딸을 데려갈 여력은 없었다. 어머니가 떠나던 날의 뒷모습보다 더 선명한 건, 외가라는 낯선 울타리 안에서 느꼈던 기묘한 소외감이었다. 그 집엔 나 말고도 사촌 동생 둘이 살고 있었다. 일찌감치 부모와 헤어진 사촌 동생들은 깊은 상처를 지닌 채 그곳에 먼저 뿌리내린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의 눈에 그들은 유독 마음이 쓰이는, 더 많이 안아주고 채워주어야 할 가여운 존재였다. 반면 나는 잠시 맡겨진 아이, 혹은 어머니가 돌아오면 언제든 떠날 손님 같은 존재였다. 그 미묘한 온도 차이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의 부피를 줄이는 법을 가장 먼저 배웠다. 동생들의 슬픔이 당연한 돌봄의 이유가 될 때, 나의 서러움은 내뱉어서는 안 될 투정처럼 취급되곤 했다.


그해 가을, 나는 자꾸만 자라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무릎 언저리에 머물던 남색 반바지는 계절이 바뀌면서 야금야금 위로 치솟았다. 무릎뼈가 툭 불거져 나오더니, 급기야는 허벅지 중간까지 끝단이 밀려 올라갔다. 거울 속의 나는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학교에 가는 길이면 작아진 바지가 부끄러워서 있지도 않은 밑단을 자꾸 아래로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미 성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천 조각은 팽팽하게 당겨져 내 결핍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멀리서 나를 위해 일하고 계셨고, 나는 그 부재를 짧아진 바지 밑단으로 견뎌내야 했다.


“여자가 되어서 왜 그렇게 짧은 걸 입고 다니냐.”


거실에 앉아 계시던 외할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고지식한 할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훈계를 시작하셨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했다. 키가 자라서 짧아졌다고, 옷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문장들은 이내 안개처럼 흐려졌다. 옷이 작아졌다는 사실을 설명하려면 어머니의 고단한 형편을 끌어와야 했고, 내가 새 옷 한 벌 편히 사지 못하는 처지라는 것을 내 입으로 증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정말로 비참한 아이가 되어버릴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엄지손톱만 뜯어냈다.


진실이 언어를 만나 뭉개지는 순간은 또 한 번 찾아왔다. 낮은 상 앞에 둘러앉아 밤을 까먹던 저녁이었다. 할아버지는 밤을 베어 물어 반쪽을 사촌 동생의 손에 쥐여주셨고, 나는 내 몫의 밤을 앞니로 깨물어 조각냈다. 툭, 하고 갈라진 밤 속에는 시커먼 애벌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노란 속살 사이로 삐져 나온 죽은 벌레를 보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밤 조각을 바닥으로 팽개쳤다.


할아버지의 시선은 바닥에 뒹구는 밤에 머물렀다. “동생은 저렇게 깨끗하게 잘 먹는데, 너는 왜 그렇게 지저분하게 구니.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밤 속의 벌레보다 더 나를 얼어붙게 만든 건 할아버지의 눈빛과 방 안을 가득 채운 낮은 호통이었다. “벌레가 있었어요”라고 말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간단한 문장이 입안에서 맴돌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지 결국 할아버지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 눈에만 선명했던 벌레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확신이 더 거대하고 공포스러웠다. 설명을 하려고 입술을 뗄수록 내 진심은 기운을 잃고 비틀거렸다. 내가 벌레를 보았다는 사실보다, 내가 '음식을 함부로 다루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더 막막했다. 결국 나는 벌레가 있었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진 밤 조각을 주웠다. 눅눅한 밤 조각은 내 손 안에서 기분 나쁘게 식어갔다.


말 대신 마음속에 쌓인 억울함은 기형적인 형태로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사촌 동생의 책가방을 몰래 숨겼다. 가방을 숨기며 나는 바랐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흐려진 마음을 이 어둠 속에서 찾아내 주기를. 내 말이 아닌 소동을 통해서라도 내 존재를 알아봐 주기를.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가방을 잃어버려 우는 동생을 보며 나는 통쾌함이 아닌, 더 짙은 안갯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설명하지 못한 마음이 낳은 것은 결국 더 깊은 외로움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설명하지 못했던 것은 표현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적당한 언어가 없었을 뿐이다. 어떤 진심은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본래의 빛깔을 잃고 조금씩 바래기도 하니까. 설명은 언제나 상대의 세계 안으로 나를 옮겨 심는 과정이었고, 그 서툰 번역 속에서 내 마음은 자주 길을 잃고 흩어졌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침묵 뒤로 숨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킬 수 있는 것이, 그때의 내게는 마지막 남은 방어막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날의 내가 선택한 침묵은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 두었다. 말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침묵은 나를 보호하기보다 외롭게 만들곤 했다. 내 진심이 상대의 세계에 닿아 엉뚱한 모양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 먼저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 침묵이 나를 도와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말하지 않은 진실은 나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안에서 희미해졌고, 오해의 벽은 내 침묵을 틈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마음이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그 안에는 어쩔 수 없이 흐려지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내 진심이 상대의 세계에 도착했을 때 처음의 모양과 조금 다르더라도, 그 어긋남이 '틀림'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에, 어쩌면 그 빈틈을 견디며 계속 건너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구겨진 마음을 안은 채로, 여전히 서툰 방식으로 서로에게 닿으려는 노력.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망설이면서도 결국은 입을 연다. 나의 진실이 상대에게 가는 동안 조금 흐려질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그 서투른 말들이야말로, 그날의 내가 끝내하지 못했던 가장 정확한 설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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