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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혁 Jun 25. 2020

스타벅스 핑크색 레디백을 사수하자

설마 내가 이럴 줄이야

“비가 오는 날엔 줄을 조금 덜 서겠지?...”

“그럼 핑크색 레디백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몇 주 전 여의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어떤 젊은 여자가 커피음료 300여 잔을 한꺼번에 시키고 그대로 버리고 가버린 사건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었다. 그 뉴스를 접한 나도 당시 “미쳤네. 미쳤어.”를 연신 내뱉으며 혀를 내둘렀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뭐에 홀렸는지 예뻐 보이는 그 가방이 갖고 싶어 졌다. 뉴스에 언급된 여자처럼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 백을 하나 받기 위해 며칠 전 스타벅스 매장에서 제일 저렴한 메뉴인 에스프레소 14잔을 한꺼번에 시켰다. 그러나 나는 절대 버리지 않았다.(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었다.) 큰 보온병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와서 아이스 트레이에 얼려서 커피 아이스 큐브를 만들어 우유에 몇 개씩 넣어 잘 마시고 있다. 그리곤 그 가방을 언제 받을지 고민을 한 후 날을 잡았다. 비가 오는 날로 말이다. 분명 비가 오니 사람들이 줄을 덜 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운 종이 포장박스


가방을 받으러  오는  아침 6시에(매장 오픈 1시간 ) 어느 스타벅스 매장 앞으로 갔다. 줄을 서자마자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내가 왜 이럴까? 여기 왜 서있을까? 하는 생각에 연신 두리번대고 있었다. 그런 부끄러움도 잠시 십 여분이 지나자 내 뒤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줄을 쫙 섰다. 속으로 “!” 외쳤다.

생각보다 1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고, 어색한 표정과 말투로 교환 바코드를 점원에게 보여주고 상품을 받았다. 받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매장을 나와 빛의 속도로 집으로 향했다. 뭔가 “유행”이나 “대세”라는 것에 정말 오랜만에 합류한 기분이 마구 좋기보다는 어색하고 뻘쭘했다.


영롱한 자태의 레디백


코로나19로 인해 사회는 아직도 혼란스럽고 사람들의 생활은 어려우며 순탄하지 못하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변함없는 일상이 반복되고 별것 아닌 것들이 이슈가 된다. 마스크를 한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아침 6시에 카페 매장 앞에 줄을 서 있는 풍경을 또 다른 사람들은 안 좋은 시선으로 보면서 지나간다. 평소의 나의 모습은 그 행인들에 가까웠지만, 쿠폰을 모아서 가방을 받고 나니 또 한 번의 다름을 인정하고픈 마음에 다가갔다.

“입장 바꿔 생각하자.”라는 흔한 교훈을 사람들이 몸으로 직접 격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흔하지만은 않다. 또한 “나는 절대 아니야.(안 그래.)”라는 강한 확신도 인생이라는 길에선 어느 순간 희미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때 타는 게 두려워 봉지 뜯는 것도 조심스럽다


예전부터 조금의 마음은 있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고 확고하게 스며들긴 했다. 정말 나쁜 행위(범법행위)가 아니라면 세상 모든 일들과 모습은 그럴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이해 안 되거나 못하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이라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부정이라고 하기보단 자신과는 상관이 없구나, 정도로 지나치면 모든 관계에서 오는 트러블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삶은 정말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런 평화로운 삶을 누구나가 꿈꾸지만 그런 평화는 내가 친 울타리 안에서만 행해지는 작은 것들이기에 큰 바다 같은 인생에서는 한껏 혼합되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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