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굴비를 좋아한다.
“저녁 뭐 먹을까?” 하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굴비!”라고 대답한다.
그리고는 꼭 덧붙인다. “반드시 영광굴비여야 해.” 할아버지가 먹어보라고
권하던 굴비 맛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구운 굴비 냄새가 집안에 퍼질 때면, 나는 어김없이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는 굴비 반찬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하지만 굴비를 매일 식탁에 올릴 수는 없었다.
간이 마음에 안 들면 아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엄마아빠는 사소한 밥상에서부터
삐그덕해서, 과거이야기, 결국 돈이야기로 싸움이 번졌다.
식탁 위 공기는 금세 앙상해졌다.
그을린 굴비 껍질처럼, 우리 가족의 하루도 금방 바스러졌다.
어떤 날은 작은 말다툼으로, 어떤 날은 집안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모든 게 부서졌다.
집안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아빠는 인스턴트로 때우기 시작했다.
혼자 우동을 끓여 먹거나, 라면으로 때웠다.
엄마가 아무리 밥을 차려도 숟가락이 닿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내가 대학생이 된 무렵부터는 내가 차린 밥은 그래도 먹는 편이었다.
“짜다”는 말 뒤에는 언제나 식어버린 관계의 맛이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미용실에서 서 있다가 돌아와 저녁을 차리고, 다음 날 도시락 반찬을 준비했다.
명절에도 “대목이라 쉬면 안 된다”며 새벽에 출근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주말엔 아빠가 좋아하는 굴비를 굽곤 했다.
아빠와 이혼하지 않는 건 순전히 너희 때문이라며...
그 굴비를 굽던 냄새가, 지금 내 부엌에서도 다시 피어난다.
나는 어쩌면 그 냄새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짠내가 가득했지만 그 안엔 정성의 온기가 있었다.
아빠의 분노와 쉬어버린 파김치처럼 변하지 않는 엄마, 그 사이를 잇던 유일한 온기는 식탁 위 굴비였다.
이제는 그 냄새만 맡아도 가슴이 저리다.
가족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길 바랐던 기억의 냄새.
그래서일까.
아들이 굴비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괜히 눈물이 난다.
그 아이가 먹는 굴비 속엔, 여전히 아빠와 엄마의 시간이 함께 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