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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래

끄적끄적

by 공작



밤의 노래


비가 오던 저녁, 거실과 주방 사이 작은 베란다의 불을 켰다. 세탁기 문을 당겨 젖은 셔츠와 수건을 꺼내자 따뜻한 습기가 한껏 올라왔다. 계량컵에 묻은 세제 자국이 얇은 막처럼 말라 있었고, 섬유유연제의 향이 천 사이를 돌며 방 안 공기를 가득채웠다. 건조대를 펴고 고정 집게를 한 움큼 벌려 고정시켰다. 소파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버튼을 누르려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실수처럼 눌린 재생 아이콘에서 2000년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베란다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안쪽에서 밖으로, 다시 밖에서 안쪽으로 옮겨놓듯, 공기마저 뒤집히는듯했다.

그때의 그 방의 불이 켜졌다. 창문이 없는 고시원, 선풍기 앞에 셔츠를 늘어놓고 손바닥으로 주름을 펴던 버릇, 중고 CD플레이어가 작동되지 않을 때 두드리던 조급한 손의 감촉. 마트에서 사 온 빵 봉지의 바스락 거림, 학원강의를 마치고 막차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갔다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웃으며 다시 돌아오던 밤공기. 그 모든 장면이 노래 한 곡의 안쪽에서, 젖은 천을 펴듯 차례로 펼쳐졌다.

나는 젖은 셔츠의 어깨선을 맞추며 고개를 들었다. 엄마, 아내, 워킹맘이라는 이름이 나를 단단하게 묶어 주었지만, 그 단단함이 때로는 각이 되어 살갗을 눌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음악은 내가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한 밤이었다.

만약 볼륨을 낮추고 바로 뉴스를 틀었다면, 이 기억들은 또 서랍 속으로 밀려 들어갔겠지. 설명되지 않은 허전함이 틈날 때마다 떠올라 하루를 흐리게 했을 것이다. 나는 수건의 모서리를 맞대어 접으며, 오래 굳은 마음을 풀어주는 음악을 들었다. 옷감이 손끝에서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마음도 단단해졌다.

음악은 그 순간의 감각까지 저장된다. 손끝의 감각, 창틀의 차가운 온도, 늦여름의 습기가 멜로디와 함께 묶여 간다. 플레이버튼을 누르는 순간 모든 감각이 한꺼번에 깨어난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한 줄을 적었다. “그때의 나는 서툴렀지만, 분명 용감했다.” 그리고 메시지 창을 열어 오래 안부를 묻지 못한 이름을 찾았다. “고마웠어.”

건조대에 마지막 수건을 걸고 거실 카펫에 앉아 셔츠 단추를 하나씩 채우며, 주말마다 ‘한 곡만 제대로 듣는 시간’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설거지를 멈추고, 식탁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일. 그리고 노래 제목 옆에 두세 줄의 마음을 붙이는 일. 한 달쯤 지나면 얇은 노트가 반쯤 찰 것이다. 마음이 요동치는 날에는 그 노트를 펼쳐 호흡을 고르리라. 이유를 만들어 외출하러 가는 길 음악을 들으리라. 큰 변화는 없겠지만, 하루에 작은 버팀목 하나쯤은 생길 것이다.

아이 방 문이 달그락 열렸다가 닫혔다. 물 마시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그 사이로 후렴이 한 번 더 나왔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 노래 뭐야? “옛날 노래야.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거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휴대폰 화면을 함께 내려 보았다.

모두 잠든 밤에도 베란다 창문에 빗방울이 길게 미끄러졌다가, 커튼 아래쪽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건조대에 걸린 셔츠 소매를 한 번 더 펴 주고, 불을 끄고, 거실의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침묵과 나 사이에 음악이 다리를 놓아주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내 삶도 한 칸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늘이 다음 홈으로 넘어가듯, 나도 한 걸음 덜 급하게 옮겨지는 감각대로 넘어가리라.

내일 아침이면 막 마른 천에서 햇볕 같은 냄새가 날 것이다. 삶은 때로 젖지만, 젖은 천을 말릴 따뜻함은 언제나 집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그 따뜻함에 등을 기대는 기술은 생각보다 쉬운 데에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늘 밤, 우리 집 세탁기 앞에서 다시 배웠다. 삶의 여백을 위해 온전히 한 곡을 다 들어보겠다고.


https://youtu.be/jfhNVU9YUD0?si=g2Bw-57Gsk0NNB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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