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꽃에 비유한다면?

가까이가기 질문상자로 글쓰기

by 로사 권민희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을 무엇일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에 찬 에너지가 가득한 미래를 예측하는 글이 아닐까.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이 하루아침에 뚝딱 써지는가? 쓰고 또 쓰면서, 무능력과 무용함을 적잖이 느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나.


내 머릿속에는 '무능력한 것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신념이 상당 부분 자리 잡고 있다. 그 생각을 많이 인정하게 된 40대 무렵에서야 꼭 필요한 것이 아닌 것들에(무을론 내 관점에서) 대해서 귀하게 만나는 마음이 자라고 있다.


꽤 오랜 시간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무용하다고 처리하는 상반된 시스템이 작용하기도 했다. 대부분 무용하다고 느끼는 쪽이 컸다. 모순이다.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 여러 면에서 아름다움에 집착하지만 무용하다는 생각을 놓지 않아서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면이 있다. 지구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모습들은 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우세일 때 자주 일어난다.


가까이가기 질문상자를 만든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2013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정몽구재단에서 주최한 H온드림이라는 사회적기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창업 컴패티션에서 인큐베이팅 팀으로 선정된 후 '명상'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교육 콘텐트를 만들고자 2010~2012년 사이에 만들었던 명상 클래스 '어른이놀이터' 참여자들에게 FGI 작업을 진행했다.


그 인터뷰에서 나온 워딩을 중심으로 회복탄력성, 감정조절, 자기긍정, 상호연결, 관계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발굴해서 마음 근력이라는 개념으로 그 상태를 언어화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질문들을 만들어 테스팅하고 수렴하여 마음근력 측정 설문지를 완성했다. 이 시기에 이런 느닷없는 연구를 가치 있다고 여기고 힘을 보태준 친구들이 생각나니 마음에 감사함이 물씬 든다.


한편 이 작업을 하던 시기에 사단법인 점프와 콜라보 한 H점프 스쿨의 공감 클래스를 5명의 상담사, 강연자와 함께 진행했다. 그때 운영한 내용을 중심으로 <공감놀이터 워크북>을 제작할 수 있었다. 2014년 마음피트니스 툴킷을 여러 시행착오를 지나(무용함의 늪을 건너) 꽤 근사한 형태로 나왔다. 이 콘텐트를 바탕으로 교육을 운영하는 것은 또 다른 주제. 적어도 3년의 시간을 투자해보기로 했다.


번아웃이 되기 쉬운 교육, 의료, 사회복지 분야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핏이 맞는 교육을 만들어가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교육을 운영했다. 테스팅에 치중하다보니 기업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다. 2015년 하반기 상상우리와 콜라보하여 에듀 툴킷 디자이너 1기 교육 과정 멘토로 함께하며 만든 콘텐트 '화톡플레이 카드 & 매거진'은 마음피트니스 운영만도 힘에 부쳐 초기 실험에 그쳤다. 그때 연구한 내용이 공감놀이터 워크북에 담긴 '가까이가기 질문상자' 파트와 함께 현재 모습의 질문상자를 만들 수 있는 내용들이 되었다.


2017년 3년간의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그해 말 법인은 문을 닫았다. 그 실험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시 결정하고 2018년 1인 자영업자 프리랜스 형태가 되어 여전히 마음피트니스 콘텐트를 활용해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죽 적다 보니 왜 가슴이 아린 것인가? 여전히 나는 무용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도에 미술치료사이자 아티스트 정은혜 님의 연결로 건강보험공단의 상담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함께하면서 가까이가기 질문상자가 큰 호응을 얻었다. 정말 필요한 곳을 위해 디자인 툴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혼자서 카드 제작을 도전했다. 전국에서 혼자서 상담을 하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2019년도 건강보험공단을 시작으로 인피플컨설팅, 시세이도프로페셔널, 풀무원건강생활, 현대백화점 인재개발원, 선부중학교 등에서 오더메이드 제작이 시작되었다. 지구를 위한 마음으로 매달 소량 제작 분이 꼭 필요한 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교사, 상담가, 강연가를 중심으로 활용이 되는 추이다. 청소년들을 위해 ‘회복적서클대화협회’ 서클랩과 학교용 맞춤제작도 했었구나. 이 도구를 이용해서 마음을 열고 서로가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는 피드백 역시 너무나 보석 같고 아름답다.


오랜 시간 동안 뭔가를 창작하고 그것을 교육의 형태로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교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있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올해도 이 일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가치 있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카카오 플백 플랫폼을 통해 올 봄부터 시작할 ‘가까이가기 질문상자로 글쓰기’ 프로젝트에 오늘부로 18명이 모였다. (목표는 50명이 모이는 것이다.) 이 숫자가 오늘 아침은 너무 고맙다. 이 친구들과 함께 소중한 질문들을 모아 2020년도 업데이트 버전을 만들고 싶다. 신나는 도전이다.

이 글을 적어가면서 나는 어떤 꽃일까 생각한다. 자그맣고 다른 꽃들을 감싸주는 안개꽃이라고 나를 여기다가도 그 묵묵함에 카랑코에 같기도 하다. 문득 어린 시절 입었던 노란 원피스에 그려진 해바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향이 좋은 프리지어나 비단향꽃무 같은 아이들이기도 하다. 여린 잎과 앙증맞은 국화과의 꽃들을 좋아하기도 하는데 한껏 씨앗을 품고 키가 크게 자라난 해바라기가 나랑 좀 닮은 느낌이 든다. 한 해 살고 장렬하게 사라지는 모습도 씩씩해 보여서 좋다.




해바라기 하면 떠오르는 JK사진도 하나 투척.




나는 스스로를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과 비교해 본 일은 많은데 꽃에 비유하는 일은 별로 없다. 프리지어나 수선화, 나리 같은 향기가 좋은 꽃을 좋아하는 편이다. 앙증맞은 풀꽃에 매력을 느낀다. 좋아하는 꽃을 꼽으라면 이것저것 할 말이 많은데 나를 비유하려니 쉽지 않다. 들꽃이고 싶은 마음도 들고 우아한 장마나 튤립 같은 꽃이고 싶은 욕망도 있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꽃을 무용하게 여기는 습관도 있다. 한창 연애하던 시기에는 꽃보다 화분을 받고 싶다고 당당히 얘기했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태국을 돌아다닐 때 사람들이 아침마다 꽃을 사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없는 살림에도 늘 꽃이 함께 하는 일상이라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옷도 꽃이 프린팅 된 것은 거의 없다. 부러 구입한 것은 매우 드물다. 관점이 조금 바뀐 것은 나이가 좀 들면 서다. 꽃을 귀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다. 꽃이 가지고 있는 색과 모양, 향기, 분위기는 여러모로 위안이 되었다. 내 안에 여유가 좀 생긴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글을 적다가 고개를 돌려 창가를 보니 커튼이 수놓아진 해바라기가 보인다. 해바라기는 내게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꽃이다. 그 기원을 살펴보면 먼저 떠오르는 게 노란색 원피스다. 5~6세쯤으로 기억나는데 밝은 노랑에 면으로 된 A라인의 모양이었는데 그 옷에 크게 수인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옷을 입으면 예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밝은 색깔이 입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좋아해서 작아졌는데도 버리지 못했다. 그 옷을 버릴 때 느꼈던 슬픔도 생생하다.

어린 시절에 나의 애착 대상이었던 것 같다. 잘 느껴보면 나는 지금도 옷을 좋아하는 편이다. 여러 영향으로 삶도 소박하게 살고 옷도 눈에 띄지 않게 입는 편인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는 면이 있다. 멋쟁이 막내 고모를 너무 외형에 집착한다고 싫어하지만 실은 나도 외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면이 있다.

어릴 때 살았던 시골집 마당에 피어있는 해바라기는 다른 꽃들과 다르게 눈에 띄고 그만의 매력이 넘쳤다. 게다가 씨앗까지 먹을 수 있으니 실용적이지 않은가. 중학교 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책에 등장했던 해바라기는 고흐에게도 큰 치유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굳이 나를 꽃에 비유하자면 해바라기 정도면 적당할 것 같다. 나처럼 키가 크고 얼굴도 둥글하니 동질감이 느껴진다. 향기 있는 꽃을 좋아해 향이 없는 게 좀 아쉽다. 해바라기는 향을 맡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향보다는 씩씩함과 당당한 모습이 좋은 해바라기 꽃. 올여름에는 해바라기가 가득한 곳에서 사진이라도 한 컷 찍고 싶다.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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