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가기 질문상자 네 번째 글쓰기
2010년이었나 타로를 공부할 때 전생에 은둔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수행이나 종교적인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끌림을 그 시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가장 즐겁게 다년던 장소 중 하나는 교회. 이십 대 들어 문화와 예술이 그 자리에 들어선 시기를 잠시 경험하고 2003년 요가와 불교를 만났다. 10년쯤은 거뜬히 그 수행 문화의 면면 속에서 삶을 꾸리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했다.
이후 2019년 12월에 세례 미사를 통해 로사라는 이름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러한 종교 문화에 대한 끌림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종교의식이 주는 그 뭐랄까 '신성함'으로 정의되는 그 고귀한 느낌 혹은 몰입감, 일체감이 좋았다. 어느 종교든 모양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그것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 사람들이 끌리는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신천지는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갈까 궁금해지는구나. 같은 것인가? 긁적)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매일 아침 108배와 명상을 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요즘은 묵주 기도라는 것을 한다. 몇 차례 안되지만 집에서 홀로 기도를 하는 일은 신선함과 신성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믿기로 결정하는 일. 내 삶에 영향력을 가져오면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 변곡점에서는 아빠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빠의 시한부 판정 이후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는가'에 대한 탐사가 시작되었고 아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카톨릭 문화를 기꺼이 받아 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아빠의 다섯 형제분들과 친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내 삶에서 감사한 첫 번째는 이처럼 가족들의 화합과 어우러짐을 종교의 한정을 넘어서 경험한 일이다.
많은 이들에게 카톨릭 신자가 되는 입문 여정인 예비자 교리 교실은 상당한 허들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 대부분을 간병을 하느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온라인 과정의 팔로업과 홍제동 성당의 배려, 작은 고모의 표현을 빌자면 은총이 함께하여 가능했던 일이다. 이 과정을 보내며 엄마도 예비자 과정을 권해서 요즘은 같은 문화와 형식으로 만날 수 있음이 두 번째 감사한 일이다.
이생을 떠나고 다음 생을 여행하는 이를 새롭게 만나는 일과 더불어 이생에서의 삶에서 또 다른 관점으로 서로가 연결되는 일은 거의 같은 차원의 변화이다. 스물셋 독립 이전을 함께 했던 아빠와 새엄마, 오빠가 다음 생으로 여행을 떠났고, 올해는 온전히 스물셋 독립 이후 만난 엄마와 새아버지 그리고 그 가족들과 삶을 살고 있다. 물질적인 몸을 떠난 가족들에 대한 애착과 현재 남아있는 가족들과의 애착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가족들과 공동체로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더 많이 존중하고 사랑으로 만날 수 있음에 특별함을 느낀다.
오는 6월이면 마지막이 될 위저드 코스에 갈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집을 나왔던 스물셋 이후의 삶에서 맞춰지지 않았던 조각들처럼 부유하던 무의식의 그림자. 엄마와 아빠의 존재를 새롭게 만나게 했던 2014년도의 인생 여행, 첫 위저드 도전을 통해 그 그림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미국 데이토나 비치에서 함께 보름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삶의 퍼즐이 새로운 방향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큰 계기였다. 그것을 만들어낸 이번 생이 좋다.